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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아침만 되면 등교길 모습 떠올라"|복교제적생을 기다리는 어느 어머니의 편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대학가가 제적생 복교문제로 진통하고 있는 가운데 학원사태로 구속된 재적생의 어머니 함재순씨 (48·서울 영등포동 94의63)가 모정의 아픔을 담은 편지를 중앙일보에 보내왔다.
함씨는 자식을 법정에 서게 한 아픔과 학교·정부에 바라는 학부모의 심정을 담담하게 쓰고있다.
올 겨울은 왜 이렇게 유난히도 추운지 날씨마저 원망스럽습니다.
제 아들 호선(21)이는 데모를 하다 지금 감옥에서 재판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에 다니다 졸업을 몇 달 앞둔 지난해 11월 붙잡혔읍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편과 제가 데모현장에서 호선이를 붙잡아 경찰서로 데리고 갔던 것입니다. 제 남편은 50여명을 데리고 있는 조그만 여행사의 대표이고 저는 살림밖에 모르는 주부입니다. 자식을, 그것도 집안의 기둥인 맏아들을 처벌해 달라고 제 손으로 경찰에 넘긴 몹쓸 에미지요.
그것이 작년 11윌 25일 이었습니다. 이미 나흘 전 교내에 뿌려진 유인물이 호선이 등 5명의 명의로 되어있어 호선이는 지명수배 중이었습니다. 며칠동안 호선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아 이상히 여겼지만 설마 하고 믿기질 않았습니다. 온 집안이 아들을 찾아나섰습니다. 22일쯤에는 잠실체육관에서 연고전 농구가 벌어져 남편과 저는 비를 맞으며 4시간쯤을 출입구에서 기다렸으나 아들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친척까지 동원해 매일 학교를 지켰읍니다.
25일은 학기말 시험시작 전 주일의 마지막 금요일이므로 틀림없이 데모를 할 것이라고들 했습니다. 토요일은 수업이 없는 학생이 많아 보통 데모를 않는다고 하더군요. 남편은 상경대 부근을, 저와 고대1년생인 딸과는 도서관 앞을 지켰읍니다. 낮12시25분쯤 주위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더니 상경대쪽에서 8백여명이 노래를 부르며 스크럼을 짜고 나가는 것이 보였읍니다. 맨 앞 줄에 낀 아들을 본 남편이 호선이 어깨 위를 덮친 것도 거의 동시였습니다.
우리들은 납치하다시피 그를 차에 태웠습니다. 남편과 시동생이 양 쪽 어깨를 잡고 저와 딸이 두 다리를 들어올렸으니까요. 집으로 향한 차안에서 호선이는 뜨거운 눈물을 마구 쏟았읍니다.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는 아들을 붙잡고 저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을 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남편과 저는 호선이를 경찰에 인계했습니다. 부모가 잡아오면 구속시키지 않겠다던 경찰간부의 말을 믿었던 겁니다. 아들을 경찰서에 놓아두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벽을 붙잡고 눈물을 삼키셨습니다. 집 안은 눈물바다였읍니다. 시어머님도 충격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셨읍니다.
집 안의 장손으로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호선이었기에 저희들의 아픔은 그만큼 더 컸읍니다.
어릴 때부터 호선이는 집안의 재롱동이였읍니다. 귀한 자식이라 6살이 될 때까지 대문밖에 혼자 내보내는 일이 없었습니다.
착하고 순한 성격에 공부도 늘 상위권이어서 도무지 걱정거리라곤 없었읍니다.
대학생활도 지극히 평탄했습니다. 가끔 친구들을 집안으로 데려와 함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셨지만 조금도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무엇이든 다 맛있다』며 일부러 저를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던 착한 제 아들이었는데….
대학에 들어가면서 조금씩 달라졌읍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이 아마도 「의식화과정」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읍니다.
저도 대학을 다녔읍니다만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요, 인재를 기르는 배움의 터입니다. 학생은 아직 덜 다듬어지고 미완성이기에 웬만한 실수쯤은 너그럽게 봐주는 편이지요. 학생이 학교 안에서 면학분위기를 자유롭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정치나 사회문제에 깊이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공자는 충성과 효도는 효도가 앞선다고 했습니다.
저는 호선이에게 얘기했습니다. 너 한사람 때문에 부모·형제는 물론이고 온 집안이 비탄에 빠져있으니 큰 불효를 한 것이라구요. 또 유인물이나 데모가 능사가 아니고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나와 기성세대의 잘못을 바로 잡고 슬기로운 방법으로 이끌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 있고 이상과 현실을 좁히는데는 단계가 있고 시간이 필요한 법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 하듯 우리 나라 국민은 우리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학교측에도 감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 자식 잘못이야 물론 부모인 저희가 모든 책임이겠지만 품안에 있을 때 자식 아닙니까.
옛말에 사부일체라 했거늘 요즈음은 따를만한 스승이 없다는 서글픈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학생들의 일을 무조건 경찰에 맡기는 것은 교육의 포기라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학생들의 주장을 때에 따라서는 학교가 앞장서서 정부당국에 요구하고 건의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제한된 시간에 교단에서 강의만 하는 것으로 교수님들이 임무를 다했다고는 말씀하실 수 없겠지요.
이 나라 최고의 지성인 총장님과 교수님들이 제자들을 못 거둔다면 누가 이들을 이끌어 갈 수 있겠습니까.
이 기회에 정부당국에도 넋두리를 하고 싶습니다. 정부는 칼자루를 쥔 강자입니다.
학생들의 요구조건이 어설프고 사리에 안 맞는다 하더라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부정적이기보다는 진취적으로 좋게 봐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는 자원이 많지 않은 나라입니다. 다행히 우수하고 풍부한 인적자원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은 이 나라의 동량들입니다. 극한적인 방법을 피하고 분위기 좋은 학교에서 면학하도록 정부가 진심으로 뜨거운 가슴을 갖고 이들을 감싸줄 때 정부의 리더십은 한층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매일 호선이를 면회하는 것이 어느덧 일과가 되었습니다. 닭장 같은 구치소 면회실에서 3분 동안의 만남이 저에게는 큰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서울서 나서 서울서 자랐지만 저는 서울구치소가 어디 있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집시법」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습니다.
이제 곧 생전 처음으로 법정구경도 하게 되겠지요. 누빈 속바지와 스웨터를 차입해주며 저는 옥바라지가 무엇인가도 배웠습니다. 제적당한 1천여 명의 부모·가족들의 통증이 하나같이 가슴을 저미는 듯 하다는 것도 면회를 다니면서 새삼 느꼈습니다.
어제 면회 때 호선이는 농담을 할만큼 여유를 찾았더군요. 밥 속에 섞인 콩을 창가에 놓아두었더니 비둘기 2마리가 매번 날아와 먹으며 이젠 품 속에 안길 만큼 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말끝에는 에미를 안심시키려는 듯 일부러 웃음까지 지어 보였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스한 봄날이 오겠지요. 호선이가 다시 책가방을 들고 학교를 가는 날이 멀지 않았겠지요.
코르덴바지에 점퍼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채 『다녀오겠습니다』고 어깨를 펴고 대문을 나서는 모습이 눈에 어른거립니다.,
함재순 <영등포동 94의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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