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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사유재산권의 존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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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 사회에 팽배하고 있는 일부 대기업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지난번 정기 국회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하기야 지난날 고도 성장기에 있어서 금융지원과 조세감면 등의 특혜를 받으면서 인플레이션의 밀물을 타고 급성장해온 일부 대기업의 중소기업들에 대한 불공정 거래 행위와 비좁은 국토를 주름잡은 토지소유 행태 등에 비추어 재벌 그룹의 끝없는 영역 확장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말과 글을 다듬는 수사학과 감정에 따르다 보면 보다 중요한 것을 잊을 수 있다.
가령 우리 경제사회의 기본 특징을 사유 재산권의 보장·시장 경쟁의 활용·민간 창의성의 발휘 등으로 압축하여 표현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이끌어 나가기로 합의된 것이라면 재벌 그룹에 대한 처방도 이같이 합의된 원칙의 테두리 속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기업 측에서도 양질의 상품을 보다 많이 생산하는 본연의 기능 이외에도 부수적으로 요청되는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여서는 안되겠지만 기업을 보는 일반국민 역시 우리의 경제생활이 직접·간접으로 기업 활동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두어야한다. 크든 작든 간에 기업의 활동이 위축되면 결국 국민 경제생활에 영향이 미치게 마련이다.
최근 어느 재벌 그룹 총수의 별세를 보고 재벌의 영역 확대는 일정한 시한성을 가진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 재벌 그룹의 경우 각각 다른 명칭을 가진 세 개의 소그룹으로 분할되었다고 보도되었다. 이들 소그룹간의 연대 의식이 다른 기업과의 관계에서보다는 강할 것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의 돌이키기 어려운 핵가족화 추세에 비추어 보면 결국 재벌 그룹은 인간 수명의 유한성에 의하여 스스로 제약된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가령 어느 탁월한 기업가가 나이 40에 재벌 그룹을 이루었다면 현재 평균 수명으로 따져 길게 잡아 25년 정도를 재벌 그룹으로서의 존속기간으로 어림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사유 재산권의 보전에 기초를 둔 시장 경제 체제를 지향한다면 국유화와 같은 충격 조치나 기업공개 강요는 이만저만한 원칙위반이 아닐 수 없다. 재벌에 대한 가장 바람직한 정책 당국의 자세는 느긋하게 4반세기를 참고 지내며 창업자로부터 후대로 소유권이 분할·이양되는 시기를 포착하여 증여 및 상속세를 적법하게 징수하도록 챙기는 것이다.
그 이전에 기업 공개를 소망스런 목표로 보아 추진하는 경우에는 정책 당국이 비공개 기업에 비하여 공개기업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대 받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데 그치고 기업 스스로의 판단에 맡겨 공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여야한다. 지난번 정기 국회에서는 정부나 국회가 기업 공개를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주게 되었으며 어딘지 의연하지 못하고 국민감정에 영합한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서민들 입장에서는 사유 재산권 논의가 돈 많은 남의 이야기로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구멍가게도 사유 재산의 좋은 사례이며 단칸방이라도 내 집 마련하겠다는 무주택 가구들의 꿈도 역시 사유 재산에 대한 선망이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시장 경제 체제를 움직이는 초석이다.
우리 주변에는 또 유형의 영역 확대가 있어 때로는 경제사회의 기본원칙을 위협하고 있다. 그것은 관료제도의 영역 확대다. 어느 나라에 있어서나 관료제도의 생리는 자기네 부서의 기존영향력을 고수하고 가능한 한 새로운 영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국민경제 운용의 큰 방향이 자율화이며 지난날의 정부 주도형에서 민간 주도형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바람직한 정책 기조의 전환을 저해하고 있는 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타성이며 특히 암처럼 끊임없이 자라나는 관료 조직의 영향력이다. 이점에 관련하여 현직 관료의 문제는 비교적 잘 알러져 있으나 퇴직 관료의 문제는 자주 거론되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후자에 조명을 맞추기로 하자.
요즘에는 부처마다 퇴직 관료들이 무슨 동우회니 무슨 친목회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물론 그 중에는 순수한 친목을 위한 모임도 있으리라. 그러나 상당수의 모임들은 본래 취지는 여하튼 결과적으로 퇴직 관료들이 현직과의 연계를 공고히 하고 현직의 영향력을 빌어 이익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현직 관료는 퇴직 관료를 잘 심어주고 보살펴주어야 그 능력이 인정되고 체면이 서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고, 이렇게 함으로써 언젠가 자기차례가 되었을 때 보살핌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따뜻한 동지애의 발로인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관행이 지나치면 국민경제의 장기이익에 앞서 해당 부처 관료들의 근시안적 이익이 선행하는 누를 범할 수 있다.
평균 수명에 비하면 정년 퇴직이 너무 이르고 넉넉지 못한 퇴직 연금제도에 비추어 유능하고 청렴한 퇴직 관료들에게 재활용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소망스럽다. 여기에도 원칙이 있어야한다.
첫째로 명예스럽게 퇴직한자 가운데 능력이 인정되어야 하고, 둘째로 공익과 사익의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직부처와 거리가 먼일을 맡도록 하며, 셋째로 영입하는 기업 또는 기관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하여 인물을 선별·영입하는 권한을 보유하여야 한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퇴직 관료 가운데 실력 있는 전문 경영인으로 변신한 성공 사례들을 여기 저기서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부적합한 인물을 영입하도록 현직 관료가 몇 가지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집요하게 영향력을 발동함으로써 무리를 빚는 수도 있다. 이 경우 어디까지가 정부 부문이고, 민간 부문인지 불분명해 진다.
재벌 그룹은 시한부일 수밖에 없으나 관료 조직의 문어발은 무 한정하다.
새로 심어주어야 할 퇴직 관료의 숫자는 증가 일로에 있는 반면 자리는 한정되어있다. 자리돌림에도 한계가 있어 무리를 무릅쓰고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가의 이익은 어디에 있으며 약한 민간이 설자리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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