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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방울로 잡았다 … 도곡동 할머니 살해 용의자는 과거 세입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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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 강남구 도곡동 함모(88) 할머니 피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사건 발생 약 2주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검거의 결정적 단서는 현장에서 확보된 미량의 땀에서 추출한 DNA였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함씨를 살해한 혐의로 정모(60)씨를 양재동 자택에서 9일 오후 3시 긴급체포해 조사중”이라고 이날 밝혔다. 경찰은 10일 정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은 함씨의 손을 묶었던 운동화 끈과 함씨의 목에서 발견된 미량의 땀에서 DNA를 확보해 수사에 활용했다. 세입자ㆍ이웃ㆍ공사관계자 등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DNA를 확보한 뒤 이를 현장에서 확보한 DNA와 하나하나 대조했다.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오늘(9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사건 현장에서 확보한 DNA가 정씨의 것과 일치한다는 연락을 받고 즉시 그를 긴급체포했다. 현장 인근에서 정씨의 동선을 역추적한 CCTV 영상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함씨의 2층 주택에 살았던 세입자였다. 최근에는 일용직 페인트공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으며 함씨와는 25년~30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씨는 진술을 거부하며 살인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정씨는 이날 오후 11시20분쯤 수서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되면서 취재진에게 “할머니와는 원래 30년 전부터 알던 사이다. 집에 가기는 했지만 문만 열려있었고 할머니가 없었다. (할머니가 판매하던) 풀무원 녹즙을 사러갔는데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때 “정씨와 숨진 함씨 사이에 수백만원대 채무 관계가 있어 이를 변제하는 문제로 다툼이 잦았다”는 이웃들의 증언이 나왔지만 경찰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해당 내용은 수사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고 탐문 과정에서도 없었던 얘기”라고 말했다.

경찰이 함씨가 사망했다는 신고를 받은 것은 지난달 25일 오후 4시 50분쯤이었다. 며칠간 함씨가 보이지 않는 점을 이상하게 여기던 1층 옷 수선가게 주인이 함씨를 발견해 신고했다. 두 손은 운동화 끈에 묶인채 몸 앞쪽으로 팔짱을 낀 것처럼 놓여있었다.

국과수 부검 결과는 함씨가 목 졸려 숨졌다는 거였다. 이에 따라 경찰은 수십억원대 자산가였던 함씨의 재산을 노린 범행으로 보고 용의자를 쫓기 시작했다. 시신이 발견된 함씨 소유의 2층 단독주택은 매매가가 15억~20억원에 이른다. 1층에는 옷가게가, 2층에는 3~4세대가 세들어 살고 있다. 이 건물에서만 수백만원대 월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함씨는 주택 뒷편의 42평형 아파트를 세 주고 매달 80여만원의 월세를 받고 있었다.

한편, 함씨의 조카며느리 김모(69)씨는 최근 경찰에서 “고모가 몇 달 전 텔레마케터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남성의 전화를 받았으며 서로 욕설을 주고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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