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春眠不覺曉<춘면불각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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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호 27면

지난 주 한바탕 비바람이 일더니 잠시 꽃샘추위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엊그제가 초목의 싹이 돋아나고 동면하던 벌레들도 땅속에서 나온다는 경칩(驚蟄)이었듯이 봄의 따사한 기운은 베란다와 거실, 안방 등 집안 곳곳을 파고들고 있다.

문득 송(宋)나라 때 사람 대익(戴益)의 탐춘시(探春詩)가 떠오른다. ‘온종일 봄을 찾아 다녔지만 봄을 보지 못하고(盡日尋春不見春) 아득한 좁은 길로 언덕 위 구름 있는 곳까지 두루 헤맨 끝에(芒蹊踏遍隴頭雲) 돌아와 마침 매화나무 밑을 지나노라니(歸來適過梅花下) 봄은 가지 머리에 벌써 와 있은 지 오래였구나(春在枝頭已十分).’ 어느 새 우리 곁 가까이에 다가서 있는 봄의 모습이 정겹게 그려져 있다.

소동파(蘇東坡)는 이런 봄날 밤의 한 시각이 천금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노래한다. ‘춘야(春夜)’라는 칠언절구(七言絶句)에서다. ‘봄밤의 한 시각은 값이 천금이라(春宵一刻値千金) 꽃은 맑은 향기를 뿜는데 달은 구름에 숨었네(花有淸香月有陰) 누대의 노래와 피리 소리는 잦아들고(歌管樓臺聲細細) 그네 뛰던 안뜰은 이제 밤이 깊었구나(鞦韆園落夜沈沈).’ 여기서 소동파가 말하는 봄밤을 인생으로 비유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을 인생의 한 시각을 뜻있게 보내자는 소리로 들린다.

당(唐)대 시인 맹호연(孟浩然)에 이르면 이런 봄밤의 잠은 인생의 달관으로 이어진다. ‘봄잠에 새벽이 온 걸 깨닫지 못하니(春眠不覺曉) 곳곳에 새 우는 소리다(處處聞啼鳥) 밤에 온 비바람 소리에(夜來風雨聲) 꽃은 또 얼마나 떨어졌을까(花落知多少).’ 언뜻 보기엔 봄의 한가함을 노래한 것 같다. 그러나 그보다는 봄을 시샘하는 비바람과 함께 덧없이 지고 만 꽃의 허무함을 담담히 바라보는 모습, 즉 인생을 달관한 태도가 엿보인다는 평을 듣는 시다.

최근 부인을 먼저 보낸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상가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미운 사람 죽는 거 보고 오래 사는 게 승리자야. 그런데 졸수(卒壽, 90세)가 되고 보니 미워할 사람이 없어.”

정치를 허업(虛業)이라고 했던 그의 또 다른 인생 강의다. 인생의 끝자락에 이르고 보니 남을 미워하는 일 자체가 다 부질없다는 이야기다. 우리 모두가 졸수가 되기 전 깨달으면 좋을 말이겠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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