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우리 시대의 농촌일기 … 그들은 왜 아플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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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당신만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니야
한승오 지음, 강
220쪽, 1만2000원

의사이자 작가였던 러시아의 안톤 체호프(1860∼1904)는 의학은 법적 아내, 문학은 애인이라고 부르며 어느 하나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새 책의 저자 한승오(55)씨에게도 들어맞는 얘기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한동안 출판사를 운영했다. 2001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충남 홍성의 시골마을로 훌쩍 내려가 농사일기 성격의 책들을 펴냈다. 『그래, 땅이 받아줍디까』(2004년), 『삼킨 꿈』(2012년) 등이다.

 이번에는 소설에 도전했다. 시골마을에서 마주친 다채로운 인물군의 사연들을 평균적인 단편소설보다 훨씬 짧은 분량 안에 담았다. 유기농 쌀농사를 지으면서다.

 한씨는 거추장스럽다는 듯 별다른 극적 장치 없이 실제로 있었을 법한 사건들을 덤덤하게 전한다. 화류계 출신 동거녀에 밑도 끝도 없이 집착하는 알콜 중독 농기계 수리기술자(‘이게 사랑일까’), 소설가 지망생인 아빠의 야간 집필을 방해하는 앞집 강아지를 내다버리는 초등학교 5학년생(‘눈물은 흘리지 않으려고 했다’) 등 인물들은 하나같이 깨지고 찢겨 아프고 외로운 이들이다. 누구나 고통스럽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서일까. 안타까운 한편 안도하게 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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