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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류청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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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84년은 정치의 해로 지목되고 있다.
연초부터 선거를 향한 붐이 일어나고 있고 선거법협상을 위한 정당간 모임도 예정되고 있다.
10.26이후 5년째이며 5.17 제4주년을 맞는 해다.
그 동안 국내외 정세는 파란만장이었으나 그래도 5.16후의 4년과 비교할 때에 훨씬 안정되었던 것 같다.
그것은 원외야당들의 활동이 부진하였고 한일국교정상화와 같은 이슈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경제성장을 위한 국민의 안정희구에도 그 일인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동안 야간통행금지해제, 정치활동 금지 자 1차 해금, 반체제인사석방·복권, 구속학생석방·복학 등으로 개혁의 상처는 아물어가고 화합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추가 해금, 해직교수의 복직, 해직공무원들의 취업이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정치개혁과 사회정화 등 혁명적 조치는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고 앞으로는 안정과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겠다. 명령이나 지시에 의한 정치·행정에서 토론과 타협에 의한 정치의 본령이 발휘되어야 하겠다.
5.16이후 민주주의의 토착화가 달성되지 못한 것 같다.
한국적 민주주의는 총화만을 강조했을 뿐 이견을 흡수하지 못하였고 비판을 수용하지 못한 결과 급기야는 유신전제를 이루어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말았다.
제5공화국 헌법은 유신헌정의 반성에서 출발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하고 단임 제를 규정하였으며 권력분립주의에 보다 충실하였고 정당 국가적 경향을 부활하게 되었다. 특히 정당법은 모든 국민의 정당 가입 권을 보장하여 서구적 정당국가로의 지향을 나타내었다.
선거법도 다당제를 원칙으로 하였고 국회법도 원내교섭단체의 지위를 강화하였다. 현행헌법은 유신헌법과는 달라 의회의 복권을 규정하고 있다.
지난 4년간의 헌법은 이 헌법정신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정당법이 국민의 정당가입 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였건만 정당법 시행령이 공무원·언론인 등에 관한 예외규정을 두어 정당가입 권을 제한하였고 또 가입이 허용된 교수 등 지식인들도 정당가입을 기피하고 정치에서 초연 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언론기본법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언론사의 정보공개 청구권까지 규정하고 있었건만 언론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로 자위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유신헌정 때의 쓰라린 경험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제3공화국에서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정치학과는 데모학과로 오인되어 정원이 줄어들었으며 오늘날에는 외교학과로 중점이 옮겨지는 경향이 있다.
정당은 룸펜이나 정치사기꾼들의 집합체로 보였고 정당내부의 민주주의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정당은 이합집산을 거듭하였고 전통 있는 정당은 존립할 여지조차 없었다. 지방의회의 구성이 부정됨으로써 정치엘리트의 훈련과 충원이 불가능하였다. 정당을 특정한 이념이나 정강·정책을 위한 정당인의 집합이 아니라 공천희망자의 공천획득을 위한 결사에 불과하였다. 해바라기 정치인과 후조 정치인들 때문에 정치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이 틈을 타 행정권이 비대·강화되었고 국민의 여론을 외면한 즉흥적인 전시 행정이 판을 쳤고 행정의 비 민주화·밀실 화를 결과하였다. 경제엘리트와 관료엘리트들에 의한 능률을 저하시키는 요소로 배격하기에 이르렀다.
독선행정은 시행착오를 거듭하였고 국민의 이익을 침해하기 일쑤였다. 환경을 보존해야 할 국유지·시유지·공원용지는 해제·불하하고 사유지는 공공복리증진이란 명목으로 그린벨트로 지정되는 등 편의행정이 이루어졌다.
유신헌정하의 국회는 행정부의 독선을 견제하기는커녕 정부의 행정을 옹호해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일까지 있었다. 국회가 국민이 알고자하는 바를 알아내지 못하고 행정의 독주를 견제하지 못한다면 그 존재의의조차 없기 때문에 국민은 국회를 불신하게 되었고 국회의 격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국회에서의 국정 연설의 관례는 연두 기자회견으로 대체되는 실정이었다.
제5공화국에 와서는 대통령의 국회국정연설이 부활되었고 국정조사권이 규정되고 운영위원회의 권한이 강화되는 등 국회의 복권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국회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회가 국민의 대포기관으로서의 역학을 다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이 국민의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
오늘날 국회의원들은 발언의 자유나 표결의 자유 없이 정당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거수기로 평가절하 되고 있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중개적 조직이어야 한다. 정당이 이념이나 정책을 중심으로 뭉친 것이 아니고 인물을 중심으로 결성된 경우 정당의 이합집산은 필연적인 것이다.
우리의 현실상 보수적 다당제만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서 여당과 제도적 야당의 존립만 허용하는 경우 이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이들 정당을 외면하고 의회외적 야당을 현성하게 된다. 스튜던트 파워가 절정을 이루었던 60년대의 세계 각국은 이들 학생들의 의견을 대표해줄 정당이 없었기 때문에 대 혼란을 야기하였다. 그러나 80년대의 야당들은 유럽의 반 핵 운동 등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했기 때문에 대 혼란은 막을 수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정책정당의 결성에 대한 서독의 경험을 음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서독은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이면서도 오랫동안 사회민주당이 연립정권을 형성하였다. 50년대에는 공산당을 위헌정당이라고 하여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해산시켰으나, 지하로 숨어버리자 감시와 규제가 더 어려워져 60년대에는 신설을 허용하게 되었다. 그 결과 공산당이 합법적으로 존재하나 선거에서는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여 국회에는 단 1석의 의석도 갖지 못하고 있다.
물론 우리 나라의 경우 공산당과 같은 반 국가단체의 결성을 허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제도적 야당에 흡수되지 않는 재야세력이나 과격학생들을 수렴하는 정당의 존재는 정치안정의 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과격제적학생들을 복교시켜 스승에 의한 설득을 시도하는 것처럼 과격정치지망생들을 제도정당에 묶어 그 활동을 주시하고 자체내의 통제를 유도하는 경우 정국불안의 우려는 적어질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도 공평한 참여기회가 부여될 때 불만은 해소될지 모른다.
정당정치에 있어서는 남북한 통일선거에도 대비하는 배려를 해야 하겠다.
북괴의 노동당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보수정당과 중도정당의 육성은 민족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법 개정에 있어서도 남북한 통일선거 시에도 활용될 수 있는 선거제도를 고안해야 할 것이오, 목전의 이해관계에만 얽매여서는 안될 것이다.
새로운 출발을 뜻하는 갑자 년을 맞아 정치의 복권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오, 민주주의 토착화를 위한 기반이 조성되어야 하겠다.

<필자약력>1933년 대구생, 서울대 법대졸, 서독 뮌헨대·미국 하버드대 법대 대학원 연구, 법학박사, 중앙일보 논설위원 역임, 현 서울대 교수(헌법학), 저서 『헌법학개론』『법과 사회정의』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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