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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도청수사 위축 없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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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검찰이 객관적 증거도 없이 진술에만 의존해 두 전 원장을 구속했다. 한나라당이 폭로한 도청문건 내용을 직접 도청했다고 진술한 국정원 직원을 조사한 검찰이 조서를 파기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 직원이 당시 근무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검찰의 수사가 허술했고, 따라서 임.신씨의 구속은 잘못됐다는 논리였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이 객관적 증거도, 물증도 없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말인가"라며 "조사 전에 진술자의 신분을 확인하는 것은 수사의 기본"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던 차에 이수일 전 국정원 차장이 20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다렸다는 듯 정치권 일부는 검찰을 성토하고 나섰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이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일각에선 "이씨가 검찰에 다녀와서 '무리하게 조사받아 괴롭고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는 근거없는 말이 나왔다.

검찰은 임.신씨에 대한 추가 조사를 뒤로 미루는 등 이씨 자살파동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씨의 자살을 비롯해 이번 수사와 관련한 모든 불행은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에서 출발했다. 불법 도청은 국민의 사생활과 통신비밀의 자유라는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한 중대한 범죄다. 휴대전화 번호가 도청장비에 입력된 1800여 명의 불법 도청 대상자는 물론 이들과 통화했을 수만 명의 사람, 안기부 불법 도청 테이프 274개에 목소리가 담긴 수많은 사람이 이미 드러난 피해자다.

검찰은 120여 일간의 치열한 수사로 국정원의 도청실태를 밝혀냈다. 이런 검찰의 노력이 정치적 의도나 외부 영향 때문에 위축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이씨 자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은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한다.

장혜수 사건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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