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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수주 과당경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76년, 당시 전경련회장이던 김용완씨는 『전장의 최 일선에 총탄과 상혼이 함께 난다』는 말로 이익을 쫓는 기업인들의 생리를 표현했다.
현 전경련회장인 정주영씨도 『기업인들이 나라를 위해서 몸을 바치라면 주저할지 몰라도 이윤을 찾아 세계를 헤매다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는 가능하다』고 말한바있다.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주들 모임인 전경련회장단들은 사석에서 「검은 상전」을 그린 일본의 기업소설 『불모지대』를 자주 화제에 올리곤 한다.
기업은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서 체질을 굳히며 성장해간다.
그러나 피나는 경쟁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기업의 속성이지만, 최근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이고 있는 과당경쟁에 대해선 우려의 소리가 높다.
해외건설 시장에서 우리나라 업체끼리 「게 제 다리 잘라먹는 식」의 경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조선과 플랜트수출 등 덩치가 큰 분야에서 해외건설 못지 않은 싸움이 자못 심각하다.
최근 중동 어느 나라에서 실시한 플랜트 입찰에서 최저 1,2위 입찰자가 모두 한국기업인데 1위와 2위 업체간의 응찰가격 차이가 무려 1억달러(약8백억원)에 이르렀다는 예도 있다.
또 오랫동안 공들여 개척한 해외 거래선을 한국으로 초청, 계약을 맺기 일보 전에 엉뚱한 업체가 전후사정을 알면서도 끼어 들어 덤핑으로 거래선을 채간다는 불평도 심심찮다.
해외에서의 경쟁은 비단 국내 업체뿐만 아니라 타국기업들도 참여한다는 점에서 국내기업들의 과당경쟁을 싸잡아 몰아붙일 수는 없다. 그러나 적자수주로 자기기업은 물론 보증을 선 은행을 망치고 국가경제에 주름을 주는 일만은 없어야겠다.
「한국주식회사」에의 기대가 지나치다면, 최소한 국가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경쟁이 절실하다.
4일 열린 전경련회장단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주영 회장이 해외건설과 조선·플랜트분야의 해외시장에서 우리업체끼리 과당경쟁이 있음을 시인하고 『국익의 차원에서 업체의 자생과 정부조정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은 의미 있는 일로 평가된다.
경쟁의 당사자들인 전경련중진 회원들의 성의 있는 노력을 국민들은 지켜볼 것이다. 또 최근의 경쟁이 회사와 회사의 경쟁을 넘어 개인의 인적차원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에서 『소속사는 다르더라도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최고경영자끼리의 인간적인 신뢰회복 노력도 기대해본다. <박병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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