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문제, 대학이 결정할 일 정부에 보고하는 나라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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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서울대 총장.[자료사진=중앙포토]

서울대의 2008학년도 논술고사 예시 문항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대는 2008학년도 입시의 핵심인 통합교과형 논술이 어떤 것인지 미리 수험생에게 알려주기 위해 논술 예시 문제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발표에 앞서 교육인적자원부는 물론 청와대까지 개입해 "본고사 가능성이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서울대는 당초 7일 논술 예시 문항을 발표하려다 교육부의 연기 요청을 받아들여 28일로 발표를 미룬 상태다.

◆ "청와대가 개입"=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지난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논술고사 예시 문항을 교육부에 전달했는데 교육부가 이를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한다"며 "청와대가 일부 문제에 대해 본고사 가능성을 제기한 모양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정 총장은 "대학입시 문제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지, 이것을 정부 부처에 보고하는 나라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지 모르겠다"며 "본고사가 무엇인지 뚜렷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무엇이 본고사에 해당하는지는 신(神)만이 아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나와 생각이 비슷한 분인데 청와대에 보고할 때 '이 부분은 대학의 자율에 맡기자'고 조언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 논술을 둘러싼 본고사 논란은 이번이 두 번째다.

서울대는 6월 통합교과형 논술 실시 등을 골자로 하는 2008학년도 입시안을 발표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논술고사를 본고사처럼 보겠다는 게 가장 나쁜 뉴스"라고 언급했다. 또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당정협의에서 서울대 입시안을 '본고사 부활 시도'로 규정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하겠다"며 전면전을 선언하면서 본고사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교육부는 논술고사와 본고사를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을 8월 말 만들었다.

◆ "단순 검토냐 사전 검열이냐"=서울대는 이달 초 통합교과형 논술 예시 문제를 교육부에 보고했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23일 수능시험이 있는 점을 감안해 시간을 두고 본고사 논란이 일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 발표해 달라는 의견을 서울대 측에 전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런 연기 요청에 대해 서울대 측도 양해했는데 정 총장이 이제 와서 이를 문제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청와대가 서울대 예시 문항에 대해 본고사 가능성을 제기한 적은 없다"며 "청와대에 서울대의 논술 예시 문제 발표와 연기 요청 등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했을 뿐이며, 청와대가 사전에 개입하거나 문제삼은 일은 없다"고 반박했다.

대신 교육부는 서울대의 일부 문제에 대해 우려하는 의견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의견은 서울대 측에 사실상 문제를 수정하라는 압력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강홍준.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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