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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의 역사(2)-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5)

중앙일보

입력

1948년,뮤지얼은 자신의 통산 세번째 MVP를 수상하며 이 위업을 달성한 내셔널리그 최초의 선수로 기록되었다.그렇지만 뮤지얼에게는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시즌 동안 39개의 홈런을 때려내었던 뮤지얼은 40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공동 홈런왕에 올랐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랄프 카이너와 뉴욕 자이언츠의 자니 마이즈에 이어 내셔널리그 홈런 부문에서 3위를 차지하였던 것이다.만약 뮤지얼이 이 해에 하나의 홈런을 더 때려냈더라면 그는 타격 3관왕을 달성한 최후의 내셔널리그 선수로 남았을 것이다.

1952년 후반 카디널스의 역사에서 새로운 전환기가 찾아왔다.프레드 사이는 카디널스 구단을 매각할 조짐을 보였고 결국 오거스트 부시 주니어가 매각에 나서며 카디널스 구단을 인수했다.

이듬해 아메리칸리그의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의 구단주였던 빌 빅은 부시 주니어에게 카디널스 구단이 매각되었음을 알자 그는 자신의 팀을 밀워키나 볼티모어로 이전할 것을 구상했다.그리고 빅은 4월 10일 스포츠맨 파크를 매각했다.1953시즌이 끝난 뒤 구장은 개축되었고 부시 스타디움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부여되었다.

1957년 8월 23일 뮤지얼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부상으로 벤치에 앉기까지 당시까지 내셔널리그 최고기록이었던 895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연속 경기 출장기록은 중단되었지만 뮤지얼은 .351의 타율을 기록하며 생애 통산 7번째이면서 마지막 타격왕에 올랐다.

그리고 이듬해 5월 14일 뮤지얼은 리글리 구장에서 펼쳐진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6회초 대타로 출장,2루타를 때려내며 3천안타의 위업을 달성했다.

뮤지얼이 서서히 카디널스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무렵인 1962년, 23살의 밥 깁슨이 마이너리그로부터 올라오며 카디널스는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깁슨이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지 1년이 지난 1963년,카디널스에서 22년 동안 뛰었던 뮤지얼은 은퇴를 발표했다.그의 등번호 6번은 9월 30일 카디널스 역사상 최초로 영구결번 처리되었다.

1964년 6월 16일 카디널스는 컵스로부터 외야수인 루 브록을 얻었다.이 시즌에 카디널스에서 103경기를 뛰며 81득점을 올린 브록은 카디널스를 7위에서 1위로 탈바꿈시켰다.119타점으로 리그 타점 1위를 차지했던 켄 보이어는 MVP를 차지하였으며 외야수인 커트 플러드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윌리 메이스,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로베르토 클레멘테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과 더불어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였다.

월드시리즈에서 카디널스는 미키 맨틀,화이티 포드가 버티고 있던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4승 3패의 힘겨운 승리를 거뒀다.켄 보이어는 4차전에서 만루홈런으로 결승점을 기록했으며 시리즈 최고였던 .478의 타율을 기록한 팀 맥카버는 5차전에서 연장 10회초 결승 홈런포를 쏘아올렸다.깁슨은 당시까지 단일 시즌 월드시리즈 기록이었던 31개의 탈삼진과 함께 2승 1패를 기록하며 시리즈 MVP에 올랐다.

배길태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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