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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문화

상식의 폭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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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상식의 폭력'은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지만 그 노골적인 속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공간은 다름 아닌 인터넷이다. 인터넷 이용자 3000만 시대에 더 이상 누가 네티즌이고 아닌가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놀라운 정보전달의 속도와 파급력으로 볼 때 전 국민이 마우스를 움켜잡고 뚫어져라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 정보통신강국에 살며 운신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지하철에서 남의 카메라에 찍혀서, 누군가는 집요한 기자와의 인터뷰 도중에 말실수로, 또 누구는 교제하던 연인을 모질게 찼다가,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직업이나 외모만으로 익명의 감시자들에게 집중포화를 당한다. 인터넷 댓글을 읽노라면 한국어가 여간 그악하고 잔인한 언어가 아니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지간히 강심장이거나 학대당하며 즐거워하는 마조히스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순간을 모면하고 외면하는 것만이 상책이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사형 집행을 참관한 작가 디킨스가 기술한 평범한 사람들의 '사악함과 경박함'보다는, 자신이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않은) 채 당당하게 옳은 일을 했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나쁜 짓이기 때문에, 늙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일은 추한 짓이기 때문에, 배신은 돌로 쳐야 할 짓이기에, 잘난 척하거나 있는 척하거나 아는 척하는 꼴은 봐줄 수가 없기에…. 나는 정의의 편이고 그들은 응징돼 마땅하다! '상식적으로'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더 위험하다. 확신에 찬 그들에게 인권의 가장 중요한 이념이 바로 상황의 '차이 없이'보호돼야 한다는 것이라는 이치를 설명하기란, 철학자 슐라이허르트의 견해대로 관용은 호감으로부터 비롯된다기보다 상대를 향한 거부감과 역겨움을 참고 견디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시키기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보통사람이 으레 갖고 있는 상궤에서 벗어나는 일까지 옹호해야 하는데? 이유는 정말 '상식적'이다. 그것은 당신이 지켜야 할 것이라고 믿는 어떤 것을 지킬 수 없는 누군가를 위한 일임과 동시에,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이 아닌 한 타인에 대해 반드시 특별할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를 보호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김별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