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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금융이 많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금융사고와 저금리와 통화긴축이 범벅이 된 올 한해를 송구영신하느라 중앙은행인 한은은 갖가지-땜질식「변법금융」을 너무마니 하고 있다. 한나라의 금융정책을 바로 세우고 집행한다는 본래의 기능은 뒷전에 두고 한해가 다가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들의 변법땜질에만 급급한 것이다.
한은이 각 은행에 거저 돈을 대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지준부리제도를 십분활용, 시중 공금리보다 훨씬 높은 연 10%의 지준부·이솔을 결정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며 통화안정증권발행제도를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이용, 시중 유휴자금이 아니라 이미 저축된 돈을 끌어쓰는데 썼다.
또한 내년 초께 시은의 구멍난 자금을 메워주는 방편으로 중소기업 자금지원을 위한 한은의 이른바 A1한도 대출제도를 활용, 한은은 각 은행에 1천5백억∼1천8백억원 규모의 자금을 풀고, 각 은행은 이를 고스란히 특정은행에 동업자 예금식으로 맡기는 변법을 이미 오래전부터 구상해놓고 실행시기만을 벼르고 있다.
한은의 이 같은 「변법금융」들은 모두다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하고 누적된 금융정책의 모순이 막판에 이르러서야 마련한 임기응변들이므로 또 다른 모순들을 내포하고있다.
시은의 지불준비금에대한 연 10%의 이자지급은 금리체계에 모순일 뿐 아니라 통화증발로 시중은행 적자를 메워주는 결과가 된다.
지난15일 하루동안 1천5백54억5천5백만 원어치나 판 통안증권도 저금리와 통화긴축의 누적된 마찰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름만 통안증권 발행이지 투신사에 1천억원, 단대사에 5백억원, 공무원 연금관리공단에 50억원 어치씩을 강제로 인수시킨 것이며 일반매출로 실제 소화한 것은 겨우 4억5천5백만원 어치에 불과하다.
또 이미 마련해 놓은 통화계획과는 별도로 영남에 3백억, 호남에1백50억원 씩하는 배급식 자금지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나쁜 선례가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금융의 정상화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면서 「정화」차원의 대책마련에는 기민성을 보여 한은은 내년부터 은행영업 마감시간을 추상같이 지키게 하겠다는 묘안을 냈으나 경제계의 반발이 거세고 정계일부에서조차 비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제동을 걸 움직임이어서 졸작으로 끝나고 말 공산이 커졌다.
조흥은행의 자금지원을 위한 방안이란 것도 결국 중소기업 자금지원을 위한 A1한도자금을 조흥은행에 직접대주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 조흥은행을 졸지에 중소기업으로 만든꼴이 됐다.
한은은 또한 지난 8월 대봉부실 대출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있는 충배은행에 대해서도 통안증권에 묶여있는 한은의 외환은행 출자분 5백억원을 물어 외환은행이 이를 연 2%로 충배은행에 빌려 준 다음 한은은 이를 다시 년 10%의 통안증권으로 사들여 결국 연간 40억원 규모의 돈을 충배은행에 대주는 기발한 묘수를 실행에 옮겼었다.
중앙은행이 이 같은 변법뒤처리에만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이상 올바른 금융·통화정책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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