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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희의 지금 웰빙가에선] 기억과 생활습관의 연결고리

중앙일보

입력

‘그래 이 맛이야.’
이 광고카피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카피는 고향의 음식, 엄마의 손맛에 대한 좋았던 기억과 음식의 맛에 연결고리를 걸어준다. 음식의 맛뿐 아니라 당시의 분위기나 감정도 모두 함께 기억된다. 이처럼 좋은 기억과 특정 행동을 잘 연결해주면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는 데도 이롭다.

운동을 배울 때 기술의 습득도 중요하지만 즐거운 기억이 연결되면 더욱 좋다. 작년 겨울 스키장에서 어떤 아이와 아빠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아빠는 아이의 스키실력을 높여주기 위해 강습을 더 받기 원했다. 하지만 1대1 강습의 힘든 기억을 가진 아이는 강습을 절대 더 받지 않겠다고 버텼다.

싫어하더라도 강습을 시키면 실력은 는다. 하지만 강사와 함께 리프트를 타고 찬바람을 맞으며 올라가 싫다는 투정 한 번 부리지 못했던 아이에게 스키는 힘들고 몹쓸 운동이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아이의 희망대로 강습을 받지 않고 친구나 부모와 함께 리프트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따뜻한 간식을 즐겼다면 아이에게 스키는 추운 겨울에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 운동이란 기억으로 남게 된다.

내가 비만클리닉에서 아이가 해야 할 운동을 정할 때도 아이와 부모 사이의 의견충돌이 잦다. 비만아들은 대개 몸집이 크고 체지방이 많아서 다른 아이들에 비해 숨이 빨리 차고 땀도 더 많이 흘린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과 경쟁하는 운동을 피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런데 부모가 여럿이 함께 하는 운동을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요한다면 아이에게 그 운동에 대한 기억은 좋게 남을 수가 없다. 자라서도 부모가 추천했던 운동은 선뜻 하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는 아이가 하고 싶어 하고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주는 것이 정답이다. 난 아이의 체중조절을 원하는 부모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주말엔 아이와 함께 몸으로 놀아주라고 권한다. 단순한 체중조절 효과 외에도 가족과 함께 하는 좋은 기억이 신체활동과 연결고리로 이어지면서 아이가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혼 후 남편과 매일 저녁 맥주와 치킨, 피자와 같은 안주를 즐기면서 25㎏이 늘었다던 30대 초반의 여자환자가 있었다. 그는 “체중은 줄이고 싶은데 그 즐거운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니 아쉽다”고 말했다. 좋은 기억과 그 음식들과의 연결고리 때문이다. 치킨·피자의 맛에 당시의 좋은 기억이 버무려지면서 해당 음식이 더 맛있게 기억되는 것이다.

그래서 난 그 시간에 대신 함께 즐길 수 있는 운동으로 춤을 배워보라고 권유했다. 나중에 그 환자는 체중이 줄고 부부사이도 더 나아졌다며 만족해했다. 좋은 기억과 운동 사이에 연결고리가 생긴 것이다.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라도 주말농장에서 자신이 정성껏 키운 채소는 맛있게 먹는다. 입 안에서 뭔가 물컹거리는 나쁜 기억보다는 자라나는 과정을 보며 신기해하고 기뻐했던 기억이 더 크기 때문이다.

난 양푼비빔밥을 보면 밥상에 놓인 각종 나물과 반찬들을 큰 그릇에 넣고 섞어 비비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시래기 된장국을 보면 국을 끓이던 어머니나 할머니가 떠오른다. 이런 기억이 좋은 것 역시 비슷한 원리다.

내 좋은 기억과 연결된 생활습관이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 아이의 좋은 기억이 무엇일 지도 따져 보자. 건강한 생활습관과 연결고리를 채울만한 좋은 기억거리를 찾고 만들어보자.

박경희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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