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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벤스」의 그림「한복입은 남자」원색 감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넓은미간…나는 한국인
조선시대 우리조상의 모습을 담은「메터·파울·뤼벤스」의『한복입은 남자』 (23.4×38·7cm)원화필름이 우리 손에 들어왔다.
원색으로 보는 이 그림은 지금까지 보는 지금까지 보던 그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연한 회색바탕의 종이에 흑회색초크로 데생 하듯 섬세하게 사생, 입술 코 뺨 귀부분에 붉온빛을 칠해 홍조를 띠게하고 붉은 철릭이어서인지 그림전체에다 연분홍 빛깔을 살포시 입혀 놓았다. 주인공은 말총으로 만든 투명한 사방관을 쓰고 있다. 정교하게 그린데다 음영마저 뚜렷해 스케치 한장에 「뤼벤스」 가 많은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히 읽을 수 있다.
이는 작가 자신이 모델에 관심이 깊었음을 대변하는 실증이기도 하다.
흑백그림에선 전혀 보이지않던 배 한척이 의미하게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미술평론가 박내향씨는 이 범선이 어쩌면 그림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부제증명이 될 수있다고 말했다.
작가와 배와 주인공 (모델) 과의 함수관계를 유추할 수도 있다는 얘기.
이 그림의 타이틀이 한때 『중국옷을 입은 남자』로 되어있었대서 중국인이라고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우선 복식의 초보적 상식만 이해하면 이런 의문은 곧 풀린다.
중국옷은 덧옷의 깃이 나란히가고 우리옷은 여민다. 주름살이 섬세한 것으로 보아 천은 명주인 것같다. 그래서인지 포근한 맛이 감돈다.
또 모델의 골격이 나는 한국인이오하고 외치는 듯 하다는 중론이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미간이 넓은게 분명 한국 사람의 상이다.

<순천 김씨 「천릭」과 비슷>
그것도 기품있는 선비의 면모를 가늠할 수 있다는것―. 복식전문가 김동욱교수(연세대)는 『당시 천릭은 넓은 이중 깃으로 동정이 없는 게 특징』 이라고 증언, 1530년대 황주의 순천김씨 묘에서 나온 천릭형태와 거의 같다고 지적했다.
천릭은 애초 몽고(원) 에서 연유되어 고려때부터 입기 시작, 조선초기에는 선비들의 계복 (변사복)으로 쓰이다가 임신-병자연간에는 모든 이에게 평복 관복으로 입도록 했다는데 유의하면「뤼벤스」의 생존 연대 (1577∼l640년) 와 일치점을 찾을 수 있다. 5호 남짓한 『한복입은 남자』 가 11월 29일 영국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사상최고가격인 32만 4천 파운드(3억8천만원)에 미국의「J·품·게티」미술관에 팔렸다는 기록은 「뤼벤스」 의 명성만으로 얻어낸 건 결코 아니다.
미술평론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작품의 우수성을 높이 사고있다.
이 그림의 역사를 보면 1747변「J 리처드슨」이란 사람이 소장했다가 1774년「R 월리푀」에게 넘어가고 다시「알베르트폰·라나」의 손을 거쳐 1910년 영국인 「크리스터퍼 헤든」 의 소유로 바뀌었다. 그가 죽은다음 부인 「류 케인」 이 상속으로 물려 받았다가 지금까지 그녀의 자손이 소장해 왔었다. 실제로 이 그림을 크리스티 화랑에 내놓온 사람이 누구이고 어디에 사는지는 일체 비밀이다.
그럼 「뤼벤스」가 어떻게 해서 한복을 입은 남자를 그릴 수 있었는지 이문제에 명쾌한 해답은 아직 없다.

<작품 우수성 높이 평가>
전문가들은 「뤼벤스」가 한때 극동지역으로 열심히 선교사를 파송한 질한 제수이트교에서 일한 사실을 들추며 혹시 그가 극동지역에 갔다가 한복입은 사람을 볼 기회가 있었는지 모른다고 추측하고 있지만 그런기록은 없다.
「뤼벤스」가 한국사람을 직접 보았다기 보다는 선교사가 가져간 한복을 선교사가 입고 있는 모습을 보았으리라는 추리도 있을 수 있다.
크리스티의 간부직원이고 「뤼벤스」 전문가인 「프랜시스·러셰망」씨는 「뤼벤스」가 극동에 갔을 가능성보다는 한복을 입은 선교사를 보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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