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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많은 이웃과 함께 하고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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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향은 누구에게나 감성의 산실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고향이나 자라난 곳은 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박석수씨는 그의 고향인 「연무동」과 경기도 송탄의 「쑥고개」를 노래한다. 특히 기지촌인 「쑥고개」는 그가 소년·청년기의 열기속에 고뇌한 곳이기 때문에 더욱 그 곳을 쓴다. 「쑥고개」란 연작이 40편이나 되었다는 것이 그것을 웅변한다. 쑥고개 연작의 하나인 『개보초』에는 그가 본 기지촌의 아픔이 절실히 드러나 있다. 「벤치로 끊겨져 나간/ 제어 철조망 곁에/ 복부에 칼침을 맞고/ 돼지형과 송아지만한 개가/ 나란히 나뒹군 다음부터...」 박씨는 또 같은 연작인 『소박』에서 결혼하고 미국에 갔다가 쫓겨온 여인을,
『발길질』에서는 학대받는 여인을 그린다. 『기지촌의 분위기를 보고 자랐기때문에 그 곳을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문제를 제가 다루어야한다는 의무감 같은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그는 최근 「쑥고개」연작중의 하나인 『개보초』를 소설로 재구성하며 『철조망속의 휘파람』이란 단편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박씨는 소설로도 데뷔했다) 박씨는 그만큼 「쑥고개」를 쓰려는 집념이 깊다. 박씨는 이「쑥고개」에서 우리 시대의 상처의 한 부위를 드러낸다. 「연무동」이야기는 또 「연기가 나지 않을 정도」로 가난한 삶을 누려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곳을 우리모두 앞에 보여주는 작업이다. 『연무동·쑥고개등 과거의 추억에 칼날을 들이대어 상처를 입는 것은 가난하고 한 많은 이웃들에 대한 관심이 식어 가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에서 연유되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그가 느끼게 되는 적당한 허세와 비굴, 웃음의 생활이 그를 괴롭힌다. 그의 시 『서울에 와서』는 「내가 만나는 사람은/모두 입이 향기로웠다/…조화가 만발하고」라고 서울의 모습을 말하고 있고 『색맹을 위해서』에서는 「조그만 슬픔에도/맹렬히 울던 내 마음의 자명고/이제는 우는 법마저/까맣 게 잊고」라고 그 속에 휘말려 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슬프게 본다. 그래서 그는 더욱 과거로 돌아가 가난한 사람, 한 맺힌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의식의 시를 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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