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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유하는 「예산안심의」|여야 심야절충에도 묘수 못찾고 정회·퇴장소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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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해예산안을 둘러싼 여야절충은 원안통과를 고수하는 민정당입장과 국민의 조세부담률을 조금이라도 낮춰보자는 야당입장이 평행선을 긋고있어 타협의 길은 쉽게 열릴것 같지 않다.
29일 심야회의를 강행한 재무위예산부수법안심사소위와 예결위계삭조정소위, 정치절충을 위한 두차례 총무회담등에서도 여야의 입장은 조금도 접근되지 못했다.
민정당측은 새해예산이 올해수준 동결이고 시급한 외채등 국가채무상환을 위해 5천5백억원의 흑자예산편성은 불가피한만큼 예산규모자체는 불가촉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말하자면 주머니속의 1천원짜리가 질긴돈가치를 갖기위해서는 건전재정의 확보를 통한 경제의 안정기조를 확실히 다져야한다는 논리다.
이논리는 야당측도 수긍한다. 다만 세수자연증가로 생기는 5천5백억원전부를 빚갚는데만 쓰지말고 그 일부는 국민의 세부담을 경감시키느라 써야하고 따라서 흑자폭을 약간 줄이자는 주장이다. 민한·국민당은 흑자폭을 축소하는 방안으로 소득세법의개정과 부가세세수목표를 하향조정하자는 대안을 제시했었다.
22일부터 시작된 예산부수법안심사소위에서는 이같은 양측의 논리가 개미챗바퀴 돌듯 반복되기만 했고 29일하오까지도 진전은 전혀 없었다.
이날 하오3시 열린 회의에서 민정당측이 중집위의 결정에 따라 『소득세법개정등 세법개정을 통한 세인삭감은 전혀 들어줄수 없다』는 방침을 통보하면서 소위는 부심하기 시작했다.
최영철소위위원장은 『소득세법과 부가세법개정이 금년엔 어렵다』면서 『앞으로 정부측에서 종합소득세체계로 이행하기위한 법개정을 할때까지 계류시키거나 그렇지 않으면 지반토론후 표결로 처리하자』는 의견을 야당측에 제시하자 야당측은 자리에서 일어섰고 정회상태가 하오9시까지 계속됐다.
민정당측은 정재철재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전략회의에서 야당이묘안을 들고 나오면 한번 검토해보자는 방향을 세웠고 이어 민한당측도 소회의실에서 임종기총무주재로 대책을 숙의했다.
민한당측은 만약 민정당측이 새해예산안을 완벽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한푼도 깎을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할 경우 구태여 회의에 참석할 필요가 없다는 불참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소위의 불참이 앞으로 예산안심의절차에 그대로 계속돼 본회의까지 「야당불참」사태가 생기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아래 「참석반대」의 묘수라도 찾아보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에따라 민한당측이 궁여지책으로 내세운것이 부가세의 내년도 세수추계를 조정해보기로하고 정부측에 최근 4년간의 부가세 예상세수목표와 확정세수간의 오차를 제시하라고 요구. 그러나 민한당측 기대와는 딴판으로 부가세세수실적은 3% 적게 걷힌 해가 꼭 한해뿐이고 나머지 3년은 오히려 더많이 걷힌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이에 예결위계수조정소위는 세입부문에 결론이 나지 못하는 바람에 정회를 거듭했고 하오10시께 열린 3당총무회담도 긴지한 정치절충이 아닌 잡담으로 시종했다.
하오10시40분께 최위원장은 민한당의 김승목의원을 옆방으로 끌고가 단독절충을 모색했다.
최위원장은 세출동결과 5천5백억원흑자는 부동의 것임을 재삼 강조하면서 민정당의 어느 누구도 이 규모를 바꾸는 대안을 들고 올라갈수 없다는점을 강조했다.
이에 민한당측은 다시 묘수를 짜기로했다. 이제는 세입삭감·국민조세부담삭감이 아니라 「참석반대」의 명분이나마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하오11시30분속개된 회의에서 민한당측은 금년도 세계잉여금분만큼 세입을 삭감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올해 예산에서 쓰고 남을 돈이 있을테니 그돈을 세입에서 미리 깍자는것. 그러나 정부·여당측은 『세계잉여금은 내년9월에나 확정되는데 아직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돈을 미리깎는다는것도 우스운 얘기고 또 예산회계법상 세계잉여금은 5천5백억원의 빚갚는 항목과는 계정이 달라 그쪽으로 돌릴수없다』고 반대했다.
회의는 자정을 넘기면서 또다시 정회상태로 들어갔다. 이때 정재철재무위원장이 총무회담장에 갔다가 쪽지를 한장 들고왔다. 임종기민한당총무가 쓴 족지에는 내년도 부가세세수과다추계로생각되는 5백28억원을 삭감하는 선으로 절충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민한당측은 5백억원도좋고 1천억원도 좋으니 이제는 민정당측이 대안을 한번 내보라고 요구했고 이에따라 최위원장은 재무부측과 상의끝에 부가세세수추계에서 5백억원을 삭감하고 그대신 2백11억원으로 잡아놓은 과년도수입에서 5백억원을 늘리자는 안을 「비공식적으로」야당측에 제시했다. 말하자면 예산규모는 변동시킬수 없으니 대중세의 의미가있는 부가세수추계를 조금 줄이고 그대신 금년도 징수유예·체납분에서 좀 더거둬 메우겠다는 눈가림식 대안인셈.
임총무가 달려와 민한·국민·의동의원들이 모두 참석한 대책회의가 열렸으나 이것으로는 참석반대의 체면치레도 안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임총무는 『그런 잠복예산을 들고오는 정부를 고발해야한다』고 흥분했고 분위기는 수습하기 어러운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최위원장이 사태를 수습해 회의를 열어보려했으나 민한당측은 『어물어물 회의를 열었다가 날치기통과하려는 속셈이 있는게 아니냐』며 회의장을 빠져나가 버렸다. 이때가 새벽1시30분.
회의는 자동적으로 유회됐다.
야당의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민정당의원들도 야당의원들이 국회밖으로 나가버렸다는 얘기를 듣고는 달려온 이종지총무와 잠시 대책회의를 갖고는 그대로 헤어졌다.
정회와 대책회의 사이에서 오간 여야의 대처방안에는 논리가 무시된 경직과 구차한 변법만이 엿보일 뿐이다.
민정당측은 새해예산을 불가촉의 거역으로 간주하고 있다. 더군다나 소득세법·부가세법등 인심을 쓸 수 있는 세법개정을 들어줌으로써 야당에 꽃다발을 안길수는 없다는 것이다.
민한당등 야당은 국민담세율을 낮추고 저소득층에 혜택이 돌아가려면 소득세법등 세법을 개정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럼에도 민정당측은 이미 확정된 부가세세수추계의 조정을 시사했고 정부측은 예산에 과소책정됐던 재원을 새로 발굴할수도 있다는 대안을 냈다.
야당측은 세법개정이 난공불낙의 요새로 보이자 체면치레용의 삭감액이라도 내라고했다. 예산안의 진정한 조정은 뒷전으로 밀리고 정치공방의 명분만을 놓고 다투는꼴이다. 이 와중에서 침몰한것은 국회의 예산심의권뿐인 것같다.[김영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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