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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공부 즐긴 세종 … 경상도 감사, 산학 책 100권 바치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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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장주 교수가 성균관대 도서관 존경각(尊經閣)에서 조선시대 수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선생님, 우리나라에는 수학자가 없었나요? 옛날 우리 선조들도 지금 저희처럼 수학을 배우긴 했나요?”

 20년 전, 당시 고등학생이던 한 제자가 이렇게 물었다. 이장주(58) 성균관대학교 수학교육과 겸임교수가 ‘조선시대 산학서(算學書·수학책)’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 계기다. 이 교수는 “오랫동안 수학을 가르쳐 왔지만 학생의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다”며 “그때부터 도서관을 오가며 자료를 모으고 여러 학자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수학사학회 이사로도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수학과 교수 30~40여 명이 모여 조선시대의 왕조 실록과 산학서를 번역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선조들의 수학을 연구하는 일을 한다. 그는 지난해에는 국제 수학자대회(ICM)에서 발간하는 ‘데일리뉴스’에 첨성대 등 한국 수학문화유산을 소개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조선시대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 역사 속 수학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조선시대 뛰어난 수학자 중 한 명으로 세종대왕을 꼽았다. “세종은 재위 12년 되던 해 책머리에 구구단부터 적혀있는 계몽산법이라는 수학책을 업무 외 시간에 공부했습니다. 정3품이상 되는 벼슬을 가진 관리들에게 책을 하사해 시험을 치르게도 했고요. 조선시대 과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임금부터 수학을 중요한 학문으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이 교수는 “세종이 수학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수학책을 일종의 ‘뇌물’로 바친 지방 수령도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세종 15년(1433) 8월 25일’에는 “경상도 감사가 『양휘산법』 100권을 왕에게 진상했다. 이 책들을 집현전, 호조와 서운관의 습산국으로 보내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세조의 경우 ‘세종 때는 고차 방정식(方程式負)을 풀고, 세제곱근을 구하는 방법도 알았는데, 요즘 삼사(三司)의 사람들은 곱하고 나누는 법(乘除法)만 조잡하게 익힐 뿐이니 수학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라’고 신하들을 질책하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선조들의 수학이 왜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이 교수는 “일제시대에 형성된 식민사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조선에서 수학은 상놈이나 하는 짓에 불과했다’ ‘조선은 과학정신이 없다’는 등 우리 수학·과학이 폄하되고 왜곡됐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서양수학이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면서 “독립운동가인 이상설 선생 등 구한말의 인물들이 새로운 수학을 소개하고 익히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학자들이 전통수학을 계속 발굴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중들과 소통하다 보면 일제에 의해 폄하된 우리 수학의 역사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채승기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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