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루게릭 '눈'으로 쓰다] 4. 사랑(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승일의 손바닥을 덮고 있는 가족의 손. 승일의 손은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항상 누군가 잡아주길 고대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기다리는 것이다. 박종근 기자

"당신은 모든 이에게 삶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는 존재, 지금 이 순간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 ID가 '고냥이'인 네티즌

"루게릭병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음악회를 열어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 - 루게릭병 홍보에 나서겠다는 음대 강사 조성규(45)씨

"저희 어머니도 루게릭병 환자입니다. 박승일씨 기사를 보고 중앙일보 100부를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줬어요." - 회사원 최문환(34)씨

희귀 불치병인 루게릭병 환자 박승일(34.전 연세대.기아차 농구선수)씨의 기사가 나가자 독자들은 e-메일과 전화 등으로 뜨거운 반응을 전해 왔다.

익명을 요구한 조모씨는 "승일씨의 투병 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며 그의 계좌번호를 물었다. 서울에 사는 서모씨는 간병하던 남편마저 병상에 누운 루게릭병 환자 이정희(56.여)씨에게 익명으로 성금을 전하겠다고 했다. KT는 "요양소 건립에 보태고 싶다"며 한국루게릭병(ALS)협회에 1000여만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승일씨의 인터넷 팬카페인 '박승일과 함께하는 ALS'에선 요양소 건립을 위한 소액 모금 운동을 벌이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나만의 루게릭병 치료법이 있다" "기 치료, 쑥뜸 등이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며 승일씨의 연락처를 묻는 독자도 많았다. 한 독자는 기자에게 e-메일을 보내 '8가지 필수 영양당이 든 이 약을 먹으면 상태가 좋아진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승일씨 사연은 정상인이 잊고 살기 쉬운 일상의 기쁨을 되찾아 줬다. 네티즌 조규희씨는 인터넷 중앙일보의 관련 기사 댓글에서 '오늘 아침 출근길은 이 기사로 눈물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의 애절한 한마디 한마디에 가슴이 아프네요. 건강하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라고 했다.

승일씨의 팬카페 방문객들도 그에게 '고맙다'는 말부터 했다. 'Bluegal'이란 ID의 네티즌은 "일상의 축복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며 그의 쾌유를 빌었다. "고통을 넘어선 소통의 실현, 그 자체가 이미 기적"(Smile Khan)이란 격려도 이어졌다.

지상파 방송도 관심을 보였다. 보도 이후 MBC와 SBS에서 승일씨에게 취재 요청을 했다. 또 KBS는 본지에 소개된 루게릭병 환자 정성근(41.작곡가)씨의 연락처를 물었다.

승일씨의 어머니 손복순(64)씨는 "(언론 관심이) 한때 부는 바람에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아들이 상처받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한국루게릭병협회 부회장 김진자(64)씨는 "특히 소외받으며 살아온 환자 가족들이 기사를 보고 많이 울었다"며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 기자가 본 박승일
세상과의 끈이 끊어질까 두려워했지만 …

박승일씨는 초인(超人)도, 성자도 아닌 평범한 인간이었다. 아플 때는 아프다고, 두려울 때는 두렵다고 마음속으로 솔직히 외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상황은 너무나 특별했다.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퇴치할 길이 없는 병마와 기약없이 싸워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운명. 넉달 동안 그와 e-메일을 주고받으며 그의 고통과 삶의 무게를 이해하려 애썼다.

승일씨가 처음 기자에게 다가온 것은 7월 1일. 띄어쓰기 없는 e-메일을 통해서였다. 온몸이 굳어 혼자서는 숨도 못 쉰다더니, e-메일 속의 그에게선 고통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관심이 반갑고 고맙다며 밝게 인사했다. 어떻게 안구마우스로 글을 쓰는지 차근차근 설명하고, 자신에게 힘이 되는 고마운 사람들을 소개했다. 그가 처한 상황이 안쓰러워 e-메일에 쓸 단어도 조심조심 고르던 기자를 그는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떻게 이렇게 꿋꿋할 수 있을까' 경이롭기까지 했다.

과거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서 그의 e-메일은 길어지기 시작했다. 추억을 한장 한장 넘기는 작업은 e-메일을 쓰는 그에게도, 읽는 기자에게도 힘에 겨웠다. 농구공을 들고 펄펄 날던 선수 시절과 치열했던 유학생활. 마침내 프로농구 코치의 꿈을 이뤘을 때 갑자기 찾아온 병의 그림자. 울컥, 설움이 몰려온 걸까. 눈물.비극.불행.희생…. 어두운 단어들이 끝도 없이 나열됐다.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와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할 땐 말줄임표가 많아졌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불행에 통곡하고, 화내고, 애원하고, 희망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상처와 배신에 아파하고 세상과의 끈이 끊어질까 두려워했다. 왜 기사가 빨리 나오지 않느냐고 기자에게 투정 부리기도 했다. 그는 그러나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눈을 깜박이지 않을 수 있어요?" 기자의 질문에 '나랑 눈싸움 하면 내가 다 이길 수 있어요'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하고 기자를 먼저 걱정해주기도 했다.

그는 e-메일을 보내줘 기자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정작 그의 e-메일을 기다렸던 건 기자였다. 기자는 그를 통해 평범한 삶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가 보낸 '나 여기 살아있다'같은 짤막한 글에 기자는 뭉클해지곤 했다. 넉달간 그의 고통과 삶의 무게를 탐사(探査)하려 애썼지만 결국 실패한 것 같다.

루게릭 12년 투병 이정희씨 "중고 휠체어라도 … "

'휠체어를 구합니다'.

11일 한국루게릭병협회 자유게시판에 이정희(56.여)씨가 이런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씨는 12년째 루게릭병과 싸우고 있다.

'6~7년 전에 휠체어를 사서 지금까지 써왔지만 너무 오래되고 낡아 이젠 앉아 있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예전엔 그래도 휠체어에 곧잘 앉아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 지낸답니다. 중고라도 좋으니 휠체어가 있는 분은 꼭 연락 주세요'.

어머니를 24시간 간병 중인 아들 김이흘(26)씨는 "예전에는 휠체어에 앉아 식사도 하셨는데 안타깝다"면서 "어머니의 몸에 맞는 알루미늄으로 된 침대형 인조가죽 휠체어를 빨리 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씨의 남편(72)은 올 2월 이씨를 간병하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래서 부부가 반지하 전셋집에 나란히 누워 있다.

◆ 탐사기획팀 = 이규연.임미진.민동기.박수련 기자

<deep@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