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스, 한국 외환위기 때 구제금융 간여 … "20년 안에 남북 통일 될 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로런스 서머스 교수는 한국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그는 한국 경제가 벼랑에 섰던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미국 재무부 차관이었다. 재무부 장관이던 로버트 루빈과 팀을 이뤄 한국의 구제금융에 간여했다. 당시 한국을 여러 차례 오갔다. 미국 석학 가운데 단연 한국 전문가로 꼽힌다.

 서머스와의 애초 대담 날짜는 2월 10일(현지시간)이었다. 서머스가 파이낸셜타임스(FT) 9일자에 ‘인플레이션의 흰자위가 보일 때 미국의 금리를 올려라(Only raise US rates when whites of inflation’s eyes are visible)’라는 강렬한 제목의 기고문을 실은 다음 날이었다. 글의 요점은 인플레이션이 확실히 살아날 때까지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올려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Fed의 금리 인상 여부가 세계 경제의 최대 관심사인 것을 감안하면 대담 테이블에 훌륭한 얘기 소재가 준비된 셈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보스턴에는 60㎝가 넘는 눈이 내렸다. 역대 7번째 폭설이었다. 보스턴 공항엔 비행기가 뜨지도 내리지도 못했다. 애리조나에 있던 서머스도 눈 때문에 보스턴에 오지 못했다. 대담 일정은 이틀 뒤인 12일로 다시 잡혔다. 대담은 눈에 파묻힌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401호에서 진행됐다.

 서머스에겐 늘 집안 얘기가 따라붙는다. 삼촌은 타계한 폴 새뮤얼슨 MIT 교수였고, 외삼촌은 케네스 애로 스탠퍼드대 교수다. 모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서머스도 경제 이론과 실무를 고루 겸비한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경제정책가로 꼽힌다. 미국 재무부 장관과 하버드대 총장을 역임했다. 오바마 정부 때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그가 주도한 위기 대책은 미국이 금융위기에서 탈출하는 전환점을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벤 버냉키 Fed 의장의 후임 1순위로 거론됐을 정도로 오바마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서머스는 대담 내내 명쾌했다. 에두르지 않는 그의 화법은 선으로 따지면 곡선이 아니라 직선이었다. 경제 이슈마다 구체적 수치를 썼고, 논거를 ‘첫째’ ‘둘째’ 등으로 열거했다. 현실 경제를 깊게 관찰하지 않고선 나오기 어려운 스타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에 대한 그의 우려에는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 많다. 그는 대담 말미, 강한 톤으로 남북한 통일 시대가 20년 내에 도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스턴=이상렬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