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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못하니 계속 대학 5학년 … NG족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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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도서관. 방학 기간인 데다 졸업식이 열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북적였다. 이날 졸업은 했지만 아직 취업하지 못한 경제학과 김모(25·여)씨는 졸업식에서 학위증만 받고 취업 스터디에 참석하기 위해 곧바로 도서관으로 복귀했다. 김씨는 “일단 취업하고 졸업할 걸 그랬나 후회가 된다”며 “친척들이 졸업식에 오신다고 하는 걸 극구 말렸다”고 말했다. 졸업을 미룬 이 학교 김모(26)씨는 “취업을 못한 친구들은 동기들 졸업식에도 가지 못한다”며 “같은 날 입학해 함께 공부했는데 졸업식이 남의 축제처럼 여겨지는 게 슬프다”고 했다. 같은 날 졸업식이 열린 이화여대 4학년 전모(27)씨도 2년째 학사모를 쓰지 못했다. 전씨는 “계속해서 졸업을 유예하다 보니 오늘 졸업식이 있는 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듯 졸업식을 맞은 대학가 곳곳에는 ‘백수의 길에 접어든 선배님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졸업과 (대학원) 입학을 축하합니다’라는 내용의 플래카드와 현수막이 나붙었다. 연세대 정문 앞에서 4년간 졸업식 꽃을 판매했다는 박형례(57·여)씨는 “졸업식에 참석하는 학생 수가 줄어서인지 꽃 판매량이 3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극심한 취업난에 졸업을 미루는 ‘NG(No Graduation·졸업유예)족’이 늘면서 나타난 졸업식 풍경이다.

 NG족은 졸업 논문이나 영어 성적을 제출하지 않아 졸업이 아닌 ‘수료’ 상태로 남거나 1학점·3학점 등 최소 학점만 남겨놓는 방법으로 졸업을 미루는 대학생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실제로 교육부가 2011년 이전부터 졸업유예제를 시행 중인 대학 26곳(재학생 1만 명 이상 기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졸업유예 신청자는 2011년 8270명에서 2013년 1만4975명, 지난해 1만8570명으로 늘었다. 3년 사이에 2.2배로 증가한 것이다. 이화여대의 경우 졸업에 필요한 교과목 등을 모두 이수하고도 논문 등을 제출하지 않아 졸업을 미룬 학생이 1331명이나 됐다.

 NG족이 급증하고 있는 건 극심한 구직난 때문이다. 23일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천국이 대학생 63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5%가 ‘취업이 안 될 경우 졸업을 유예하겠다’고 답했다. 이는 2013년보다 34% 늘어난 수치다. 응답자들은 졸업을 미루고 싶다고 대답한 이유로 ‘재학생 신분에서 입사 지원하는 게 더 이익이라서’(29%), ‘여행·취미 등 대학생 때 해야 할 것을 다 해보려고’(25.8%), ‘공모전 등 스펙 쌓기에 더 집중하려고’(20.9%) 등의 순으로 답했다. 알바천국 이승윤 대외협력팀 팀장은 “취업난 속에 대학생들의 구직 부담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NG족이 늘어나면서 대학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재학생이 늘면 ‘교수 1인당 학생 수’ 등 각종 대학 평가에서 불리한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도서관 등 학교 시설 사용에 있어서도 졸업유예생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 줘야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했다. 실제로 일부 대학에서는 졸업을 하지 않고 도서관 자리만 차지한다며 재학생들이 항의하는 등 NG족이 학내 갈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서울시립대 2학년 정모(20)씨는 “졸업을 유예해야 하는 선배들의 사정도 이해하지만 재학생들의 등록금에 편승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채승기·김선미 기자

◆졸업유예 제도=사실상 졸업 요건을 충족한 재학생이 해당 학기에 졸업하지 않고 일정 기간 졸업을 미룰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법적 근거나 정해진 규칙은 없지만 많은 대학이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도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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