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수사권 싸움, 경찰 행동 문제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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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경찰청이 검찰에서 직접 수사한 사건의 피의자 호송을 거부하라는 지침을 전국 경찰에 내렸다가 닷새 만에 이를 사실상 철회했다. 이 때문에 전국 곳곳에서 영장실질심사가 무산되거나 유치장 입감에 차질이 생기는 등 혼란이 빚어졌다. 경찰은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사건의 피의자를 경찰이 호송할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수형자 등 호송 규칙'에 명문이 없다는 얘기다. 호송 규정을 어떻게 해석하든 국민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검찰과 경찰이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면 될 문제다.

문제는 지금까지 두 기관 사이에서 아무 마찰 없이 잘하던 일을 어느 날 갑자기 내 일이 아니라고 손을 놔버린 데 있다. 경찰은 검찰과 아무 사전 협의 없이 불쑥 호송 거부 지침부터 내려보냈다. 그 이유에 대해 어느 경찰 간부는 "검찰이 자신들이 수사 중인 피의자를 '데려가라''데려와라'라고 지시하는 것은 경찰을 종처럼 부리려는 권한남용"이라고 말했다.

수사권 독립을 놓고 지금 경찰이 벌이고 있는 행태는 분명히 잘못됐다.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를 개사해 만든 검찰 비난조의 노래를 인터넷에 올리고, 수사권 문제 공청회나 토론회에 경찰관들이 대거 몰려가 압박하는 예도 있었다. 이 문제는 법과 절차를 지키면서 풀어가야지 골탕 먹이기, 기 싸움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기관이, 그것도 법을 집행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인 경찰이 마치 시정잡배가 행패 부리듯이 나온다면 그런 기관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세상에 국가기관 간에 이런 식의 치졸한 싸움을 벌이는 나라가 또 있을까. 그런 기관에 수사권을 줬다가는 피해는 국민만 보지 않겠는가. 이런 식으로 비이성적, 비타협적으로 나가면 국민도 경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청와대가 집단행동을 자제토록 경고하고 나섰을까.

경찰이 진정으로 수사권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수사권을 올바로 행사할 수 있다는 신뢰를 먼저 국민에게 보여라. 집단이기주의를 위해 수사권이 농락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