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왕권축소싸고 국왕-수상 대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입헌군주국 말레이지아는 요즘 왕권 제약을 위한 개헌안을 놓고 왕실과 민선 내각사이에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이 갈등은 1981년6월 집권한 「마하티르」수상이 지난 8월 의회에서 22개항목의 헌법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이에대한 국왕의재가를 구한데서 시작됐다.
이들 개헌안의 내용중 왕실과 내각사이에 갈등을 불러온것은 국왕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수상의 권한을 깅화하는 2개 법안 즉▲의회가 통과시킨 입법안에대한 국왕의 거부권삭제▲국왕의 권한인 국가긴급사태선포권을 수상에게 넘겨야한다는 것들이다.
「마하티르」 수상은 의석수 1백54석의 의회에서 1백32석을 차지하는 집권여당의 의회내 압도적 세력을 업고 이같은 법안을 통과시킨뒤 「얀·디-페르투안·아공」 국왕의 서명을 기다리고 있으나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재가를 얻지못하고 있다.
「마하티르」 수상의 이같은 왕권제한 법안 강행은▲전통 왕권이 경제·사회개발에 부정적인 요소가 있고▲9명의 국왕을 지원하는데 국가재정이 넉넉하지 못할뿐 아니라▲이들 국왕들은 부유하며 심지어 경제계까지 침투, 국민들의 불만을 사고있다는 이유를 들어 민선 내각과 수상에게 국왕의 주요 권한을 넘기자는 것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말레이지아안에서의 국왕의 권위가 절대적이어서 아직 공개적으로 거론되지는 않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마하티르」 수상과 왕실이 정치적 생명을 내걸고 맞서고있어 불씨는 속으로 뜨겁게 타오르고있다.
말레이지아에서는 국왕을 모욕하는 어떤 언행도 반역으로 처벌될만큼 국왕의 권위는 절대적이어서 「마하티르」 수상의 개헌시도는 엄청난 도전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왕실 입장에서 볼때 의회가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동의를 하지 않자니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의회의 결정을 무시하는 꼴이되고 서명을 하자니 자기 손으로 자신의 목을 죄는 입장이돼 재가를 계속 미루고 있다.
말레이지아는 전국 13개 지역에서 9명의 왕이 각각 독립해 9개지역을 통치하고있고 나머지 4개지역은 국왕이 임명한 총독이 다스리고 있다.
이들 9명의 왕과 4명의 총독이 모인 「통치자회의」라는 왕들의 회의기구에서 5년 임기의 전국국왕을 선출, 서로 돌아가며 국왕의 자리에 오른다.
이들 9명의 왕은 세습왕정으로 각각 자기지역에서 왕궁을 갖고 절대권력을 갖고 있으며 「조호르」왕가의 경우 독립왕실병력을 유지하고 있는등 그 권한과 힘은 막강하다.
현 국왕 「얀·디-페르투안·아공」은 84년4월이면 임기를 마치게돼 일단은 자신의 재위기간중 이번 법안에 서명을 않고 그냥 임기를 마쳤으면 하는 움직임이다.
현국왕이 이번 위기를 잘 넘길 경우 「마하티르」 수상은 더욱 난처한 입장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84년 새 국왕선출에서 가장 유력한 2개 왕실, 즉 「조호르」왕가와 「네그리·셈비란」 왕가의 두왕은 왕권을 지키겠다는 완강한 태도를 가진 인물들로 새국왕이 될 경우 이번 개헌안에 결코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마하티르」 수상의 경우 이번 법안재가획득에 실패하면 정치적으로 왕의 불신임을 자초하게 된 셈으로 의회를 해산, 총선을 다시 해야하는 정치적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정창■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