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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만한 어린이집 늘리는 게 최고의 출산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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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저출산이 계속 가다가는 경제가 좋아지더라도 소용이 없어요. 세금 낼 사람이 없는데, 이렇게 되면 연금체제가 무너질 겁니다.”

 인구협회장을 지낸 충남대 사회학과 전광희 교수의 경고다. 본지 여론조사에서 전문가·국민 할 것 없이 출산율 제고를 향후 한국이 집중해야 할 핵심 복지정책 중 하나로 꼽았다. 이번 조사에서 두 갈래로 최우선 복지를 물었다. 하나는 구체적 복지 대상이다. 국민·전문가 할 것 없이 1순위 복지로 송파 세 모녀 지원, 2순위로 영·유아 보육을 들었다. 다른 항목에서는 최우선 복지 테마(분야)를 질문했다. 일반 국민은 출산율 제고(30%)-빈곤 사각지대 해소(23.3%)를, 전문가는 빈곤 사각지대 축소(48.3%)-출산율 제고(36.7%)를 들었다. 이처럼 국민과 전문가가 바라는 최우선 복지는 출산율 제고와 빈곤 사각지대 해소로 압축된다. 국가의 존망을 걱정하면서 출산율 제고를, 송파 세 모녀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사각지대 축소를 주문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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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지난해 출산율은 1.19명이다. 6일 출범한 제4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둘째 출산을 포기한 가정을 조사해 보니 64%가 가장 희망하는 출산율 제고 정책으로서 ‘믿을 만한 어린이집 확대’를 손꼽았다. 그런데 현재 국공립 시설은 전체의 5.7%다. 지금(2489개)의 두 배로 늘리려면 5조원(개당 20억원 가정)이 필요하다. 인천 부평구에 사는 주부 홍소현(35)씨는 “곧 둘째가 태어날 거라 33개월 된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은데 집 근처 구립 어린이집은 대기 번호가 300번에 달해 포기했다. 믿을 만한 국공립 어린이집을 많이 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육아휴직 보장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최진호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육아 휴직 제도가 있지만 눈치를 봐야 하고 실질적 지원도 적다. 젊은 부부들은 보육 문제가 제일 중요한 만큼 통 큰 지원으로 육아 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직장인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할 경우 연간 1조860억원(1인당 100만원으로 가정)의 고용보험 기금이 필요하다. 보건사회연구원 이상림 인구연구센터장은 “10년간의 저출산 대책에 쓴 돈이 적고 기간도 짧다. 벌써 효과가 없다고 하는데 외국에서 보면 웃을 일”이라며 “ 그나마 이렇게 투자하니까 덜 떨어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빈곤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가장 우선적 대안은 부양의무자 제도 개선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최저생계비 이하 비수급 빈곤층 인권 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빈곤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최우선 대책으로 부양의무 제도의 개선이나 폐지를 제안했다. 부양하지 않는 자식(부모)이 있다는 이유로 보호망에서 벗어나 있는 빈곤층 117만 명과 송파 세 모녀 같은 차상위계층 68만 명이 대상이다.

 지난해 3월 울산시 한 주택가에 주차된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된 윤모(45)씨는 일용직 근로를 하다 1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기초 수급자 신청을 했으나 아버지가 있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헤어져 왕래가 거의 없는데도 윤씨는 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부양의무자 규정을 운영하는 선진국은 거의 없다. 이를 없애려면 6조7000억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복지부 임호근 기초생활보장과장은 “예산도 문제지만 이 규정을 없애면 자녀의 부양의식을 흐리게 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새정치민주연합이 주장한 대로 부양의무자에서 사위·며느리, 65세 이상 노인을 빼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약 2조원이 필요하다. 김미곤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 지원망 밖에 있는 빈곤층을 구제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송파 세 모녀가 계속 나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국민들은 무상급식을 가장 먼저 줄여 출산율 제고 등에 쓰자고 제안한다. 본지 여론조사에서 축소 대상으로 무상급식·무상보육·기초연금을 선택했다. 또 국민들은 소득 상위 30%를, 전문가는 절반까지 줄이자는 의견을 냈다. 올해 세 가지 복지의 예산은 23조1500억원인데, 국민 의견대로 하면 7조원을, 전문가 생각대로라면 11조6000억원을 아낄 수 있다. 이번 설문조사 응답자들은 ‘앞으로 복지 대상을 저소득층 위주로 집중해야 한다(국민 55.4%, 전문가 36.7%)’는 의견이 강했다. 소득 상위 30~50% 축소와 궤를 같이한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몇 년간 복지 예산이 크게 늘었지만 빈곤율은 떨어지지 않았다”며 “무상복지 예산을 줄여 저소득층과 출산율 제고에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박현영·이에스더·정종훈 기자 welfar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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