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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마라톤] 초반 전력 질주…한때 세계기록 기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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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우승해서 너무 기쁘다. 이기기 위해 준비를 많이 했는데, 목표를 이뤘다."

6일 중앙일보 서울마라톤에서 맨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윌리엄 키플라가트(33.케냐)는 "오랜만에 국제대회에서 우승해 감격스럽다. 코스도 마음에 들고, 기록도 만족한다. 한국 사람들의 친절과 정성이 고마워 내년에도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 3대 마라톤인 2003 로테르담대회에서 우승한 키플라가트는 이후 부상으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다 이날 중앙마라톤에서 우승하며 재기했다.

키플라가트가 두 팔을 활짝 들고 올 시즌 국내 마라톤 대회 최고기록인 2시간8분27초에 결승 테이프를 끊고 있다. 김성룡 기자

"출발 때에는 궂은 날씨 때문에 성적이 나쁠까봐 걱정했다"는 그는 "20㎞ 지점부터 날씨가 화창해 레이스하기엔 최적이었다. 5만 달러의 우승 상금은 케냐에 있는 4명의 자녀와 아내를 위해 쓰겠다"고 말했다.

가랑비가 간간이 뿌리긴 했지만 마라톤 하기에 최적의 온도인 14도의 날씨 속에 80여 명의 엘리트 선수들은 빠른 속도로 레이스를 전개했다.

5㎞와 10㎞ 통과 기록이 각각 14분58초, 29분58초로 세계기록(2시간4분55초) 작성 때의 기록(각각 15분1초, 29분58초)과 같거나 능가할 정도였다.

10㎞를 지나면서 하나둘 뒤로 밀렸고 한국의 기대주 김이용(32.국민체육진흥공단)도 12㎞를 지나며 선두에서 멀어졌다.

15㎞ 지점부터는 아프리카 선수들이 주축이 된 10명으로 선두그룹이 형성됐다. 이들은 계속해서 스피드를 줄이지 않았고, 20㎞ 통과기록이 1시간47초로 세계기록 작성 때의 59분45초에 1분2초 뒤질 뿐이었다.

반환점을 지나면서 선두그룹이 6명으로 압축됐고 30㎞ 지나면서 유력한 우승 후보인 윌슨 온사레(케냐) 등 3명이 또 밀려났다. 남은 3명은 키플라카트와 로저스 롭, 제임스 로티스 등 모두 케냐 선수였다. 셋은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였고, 이후 기록보다는 순위싸움 양상으로 변했다.

36㎞ 지점을 지나면서 키플라가트가 스퍼트, 독주 끝에 우승했다. 종반 불 같은 스피드로 추격해온 멜레사 가샤우(에티오피아.2시간9분31초)가 로티스(2시간11분57초)를 3위로 밀어내고 2위를 차지했다.

신동재 기자<djshi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 탈출구 못 찾은 '마라톤 한국'

이명승 2시간 15분대로 국내1위, 김이용은 기권

중앙일보 서울마라톤을 끝으로 올 시즌 국내 마라톤은 사실상 막이 내렸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한 해였다.

국내 마라토너 중 올 시즌 2시간10분 이내에 들어온 선수가 없다. 황영조(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이봉주(삼성전자).김재룡(한전코치).백승도(삼성전자 코치) 등이 주름잡던 1990년대엔 2시간10분을 달려도 국내대회 5위 안에 입상하기 어려웠다.

올 시즌 국내선수 최고기록은 9월 베를린마라톤에서 이봉주가 세운 2시간12분19초다. 2시간15분 이전에 테이프를 끊은 선수도 고작 네 명이다. 중앙 마라톤에서 한국 선수 중 가장 기록이 좋은 이명승(26.삼성전자.사진)이 2시간15분14초였고, 기대주 김이용은 30㎞ 지점에서 기권했다.

간판 이봉주는 36세로 노쇠했고, 유망주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선수층도 워낙 얇아 한계가 있다.

여자마라톤도 마찬가지다. 권근영의 기록은 세계기록보다 34분 늦고, 마스터스 1위 기록(2시간54분15초)보다 5분여 빠를 뿐이다. 이은정(삼성전자)이 홀로 분전하고 있는 형국이다.

황규훈 육상연맹 전무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는 해에는 전반적으로 기록이 부진하다"며 "육상연맹이 체계적인 선수 발굴 및 육성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기록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 첫 완주로 우승 … '피는 못 속여'

여자 엘리트 1위 권근영
한국기록 권은주 친동생

여자 엘리트 우승자인 권근영(左)을 언니 권은주가 격려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여자 엘리트 부문 우승자인 권근영(26.경산시청)은 한국 여자마라톤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권은주(28.제주시청)의 친동생이다. 기록은 2시간49분9초로 언니의 기록(2시간26분12초)에 비해 훨씬 뒤지지만 첫 완주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 권근영은 주종목이 1500m인 중거리 선수인데 시험 삼아 마라톤에 나와 우승을 차지했다.

권근영은 "첫 마라톤 도전(춘천마라톤)에서 상위권으로 달리다 페이스를 잃어 중도에 포기했다. 이번에는 완주를 위해 육상선수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페이스로 잡았다. 일단 완주에 성공했으니 언니가 세운 한국기록을 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동생을 응원하러 경기장에 나온 권은주는 "중학교 때는 동생이 나보다 더 잘 뛰었다. 마라톤이 너무 힘들고, 동생은 중거리에 더 맞는 편이어서 마라톤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피는 속일 수 없나보다"고 기뻐했다.

성호준 기자<karis@joongang.co.kr>

*** 마스터스 부문별 우승자

남자 풀코스 도나티엔

"남자 마스터스 1위가 골인하고 있습니다"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결승선으로 달려들어온 이는 검은 피부의 외국인이었다. 2시간26분17초로 풀코스 1위를 차지한 주인공은 아프리카의 브룬디 출신인 부징고 도나티엔(27.위아). 도나티엔은 현재 난민 신분이다. 그는 브룬디 국립대 경영학과를 다니던 2003년 대구 여름유니버시아드 때 하프 마라톤 선수로 한국에 왔다가 망명했다.

여자 풀코스 심인숙

심인숙(38)씨는 풀코스 3연패를 이뤘다. 심씨는 2003년 3시간1분59초로 우승했고, 지난해에는 2시간58분19초로 SUB-3(3시간 이내 주파)를 달성하며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번 대회에선 2시간54분15초로 골인, 엘리트 선수와 합쳐도 2위에 해당하는 좋은 기록으로 우승했다.

심씨는 "내년에 다시 한번 2시간50분에 도전해 보겠다"며 벌써 4연패의 의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남자 10km 여흥구

33분44초 만에 10㎞ 결승 테이프를 끊은 여흥구(29.안산시 돈오동)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충청북도 육상팀 코치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장거리 선수였고, 졸업 뒤 지도자 생활을 했다. 현재 일하고 있는 기아자동차에 입사한 것은 8월. 여씨는 풀코스도 2시간 40분대에 주파하는 실력파다.

여자 10km 이민주

"40분9초라고요? 제 기록은 37분대인데,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았나 봐요."

1위로 들어왔지만 이민주(35.부산 문현동)씨는 이날 기록이 실망스럽다. 부산에서는 '마라토너계의 샤라포바'라고 불리는 이씨는 "이 바닥에서는 이미 스타"라며 "모 스포츠 용품 업체(나이키)에서 협찬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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