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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지상 논쟁] ‘김영란법’ 핵심 쟁점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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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일명 김영란법)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법적 완결성이 부족한데다 위헌 가능성이 있다는 반대론과, 뿌리 깊은 부패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극약처방’이 불가피하다는 찬성론이 맞서고 있다. 법 적용 대상으로 원안(原案)에 없던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 등이 포함된 것도 논쟁거리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일부 기자들과 만나 “내가 (김영란법 통과를) 막고 있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김영란법’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뭘까. 중앙SUNDAY는 ‘김영란법’ 반대론자인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과 찬성론자인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을 만나 각자의 주장을 들어봤다.

“깡패 같은 법 만들어 놓으면 당장 시원해도 결국 부작용” - 새누리 김진태 의원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김진태 의원은 “지금까지 법이 없어서 우리나라의 부정부패가 근절되지 않은 것이냐”고 반문했다. 검사 출신인 김 의원은 “법이란 일반적으로 어떤 경우에나 적용될 수 있도록 탄력성을 지녀야 하는데 여론에 휘둘려 누더기 법을 만들어 놓으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김영란법’에 대해 법률가들은 법적 완결성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대상 범죄가 불명확하고 대상 범위도 너무 넓다는 것이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그동안 부정한 돈을 받거나 청탁했을 때 처벌하는 법이 없었나. 형법상 뇌물죄가 있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조항도 있다. 문제는 대가성을 따지다 보니 검찰에서 무혐의 판정을 받거나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가 많고 국민이 이를 수긍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있는 법을 잘 운용하면 되는데 무조건 새로 법을 만들어 해결하려는 ‘법률 만능주의’는 해결책이 아니다.”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극약처방’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깡패 같은 법을 만들어 놓으면 지금 당장은 속 시원하다 하겠지만 결국 부작용이 생긴다. 약을 잘못 썼다가 중병에 걸리면 오히려 고치기 어렵다. 입에 쓰더라도, 당장 약효가 발생하지 않아도 천천히 치유할 수 있는 처방이 맞는다고 본다.”

-법 제정 자체를 반대하나.
“내가 가장 심한 반대론자로 비춰지는 것 같은데…. (웃으며) 법사위원으로서 해당 법의 문제점을 고치는 게 우선이다. 국민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다. 국민의 바람을 담아내되 문제가 되는 조항을 고치는 쪽으로 연구해야 한다.”

-어떤 조항을 고쳐야 하나.
“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다만 국민여론이 강하니까 무조건 반대할 수만은 없다. 우선 정무위안 2장 ‘부정청탁 금지’ 조항은 빼야 한다고 본다. 이걸 빼면 타협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문제인가.
“국민의 청원권을 근본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정무위안에서 부정청탁의 유형을 15가지로 제시하고 있는데 모두 ‘법령·기준을 위반하여’라고 조건을 달았다. 그럼 예외조항은 뭔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어디까지가 ‘법령·기준’을 위반한 건지, 어디서부터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것인지 기준이 모호하다. 결국 민원을 받는 공무원이 판단해야 하는데 부정청탁에 걸릴 것이 두려워 아예 민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법에 저촉될까봐 공무원이 본연의 업무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외국에선 로비스트도 합법화하는데 우리는 역행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한다고 하는데 모호한 부정청탁 조항을 만들어 두면 공무원들은 국민 고충을 들어보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동안 나쁜 선례가 있다 보니 청탁이라고 하면 무조건 나쁘게만 보는데 공무원은 민원을 해결할 의무가 있다. 청탁만 하는 것까지 처벌하는 건 과잉이다.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까지 대상이 된 것을 두고 논란이 많다. 언론의 공적 역할이 있고 공립·사립학교 교원의 직무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포함해도 되지 않을까.
“공무원이 부정한 청탁이나 금품을 받는 것을 막겠다는 법의 문언적 의미에 반한다. 공적 역할을 한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까지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으로 보는 건 통념에 어긋난다. 아무리 공적 역할을 한다 해도 사적인 영역과 혼동해선 안 된다.”

-대통령도 입법을 촉구한 바 있다. 2월 국회 통과가 가능할 것으로 보나.
“대통령께선 원칙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 또한 헌법 테두리 내에서 판단해야 한다. 국민 일상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을 인기영합주의로 처리해선 안 된다. 몇 주 내에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신중하게 논의해서 숙성시킨 다음 처리해야 한다.”

“부패 고리 끊자는 게 법 취지 민간 영역 청탁도 제재해야” - 새정치연합 민병두 의원

민병두 의원은 “정무위안조차 ‘김영란법’ 원안의 취지에서 후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법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오히려 정무위안보다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민 의원은 “김영란법이 ‘극약처방’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법 대상이 너무 포괄적이어서 위헌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위헌 소지는 없다고 본다. 정무위에서 이미 대상을 제한해 놨다. 공무원 범위가 법마다 조금씩 다른데 가장 넓은 게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른 공적 업무 종사자다. 입법정책적으로 여야가 합의하면 된다. 이미 정부와 입법조사처 유권해석을 받은 것 아닌가.”

-국민 청원권을 제한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법의 핵심 취지는 부패의 고리를 끊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우리가 남이가’ 문화와 지연·혈연주의를 없애자는 것이다. 상층부의 핵심 권력에 직접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파워엘리트를 통한 청탁이 이뤄지는데 이를 없애자는 것이다. 합법적인 국민청원을 제한하자는 게 아니다.”

-지난 3일 정무위안이 ‘김영란법’ 원안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뜻인가.
“정무위안은 부정청탁을 15가지로 유형화하고 7가지 유형의 예외조항을 뒀다. ‘나쁜 청탁’과 국민청원과 같은 ‘착한 청탁’을 구분해서 자의적인 사법 처벌을 할 수 없도록 하자는 취지였지만 대부분의 부정청탁이 처벌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맹점이 있다. 모든 부정청탁 유형에 ‘법령·기준을 위반하여’라는 조건을 달고 있는데 누가 대놓고 법령·기준을 위반하는 청탁을 하겠나. 대부분 ‘선처해 달라’ ‘잘 봐달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이뤄진다. 이런 은밀한 청탁이 빠져나갈 구멍을 메우려면 ‘법령·기준을 위반하거나 영향을 미치도록 하여’로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

-일종의 특별법인 ‘김영란법’이 전 국민의 3분의 2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있다.
“도로교통법은 전 국민이 규율 대상이다. 이를 두고 ‘왜 전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느냐’고 비판하지는 않는다. 결국 직접 대상은 힘 있는 곳, 권력 있는 곳, ‘갑질’ 하는 곳에 한정될 것이다. 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공포를 과잉 조장하는 것 아닌가.”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될 것인지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회상규나 상식은 많이 바뀌었다. 청탁은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옛날 상식대로라면 국회의원의 결혼식 주례가 왜 범죄인가. 미풍양속이지…. 주례 구하기 어려운 국민이 의외로 많다. 국회의원이 해주면 돈도 안 들고 좋지. 그런데 이제 이걸 ‘재능 기부’로 보는 게 아니라 ‘편의 제공’으로 보는 거다.”

-사법 선진국에선 공무원 윤리규정만으로도 부정청탁이나 금품수수를 엄격히 제한한다.
“외국엔 김영란법이 없다. 우리나라가 압축성장을 하다 보니 이런 법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한 번에 불법 정치자금의 악순환을 끊었다. 위험성도 분명 있지만 다른 나라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운 것을 한 번에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의 매력이자 힘이다.”

-민간영역에 대한 부정청탁도 ‘김영란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정무위안으로는 공직자에게 들어오는 민간영역에 대한 청탁을 처벌할 수 없다. 산업은행에 청탁하면 불법이고 신한은행에 청탁하면 합법이다. 서울대병원 진료를 앞당겨 달라는 건 불법인데 민간병원 청탁을 하면 합법이다. 재벌그룹에 인사청탁을 해도 합법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민간영역에 대한 부정청탁이 얼마나 많은가. 민간영역에 대한 채용·승진·전보, 계약, 재화나 용역 거래 등 청탁을 금지하는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 만약 법사위에서 이를 보완하지 않으면 별도 법안을 제출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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