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집 가란 말 수천 번 더 들어 … 아파 보니 ‘가야겠구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14호 12면

가수 현숙은 화장실도 혼자서는 무서워서 가기 힘들어할 것 같은 앳된 소녀의 모습이다. 최정동 기자

곧 설날이다. 명절날 미혼 남녀들은 “언제 결혼할 거냐”는 ‘문책’을 당한다. 미혼 직장인들이 설날 가장 듣기 싫은 말은 ‘결혼은 언제 할래, 애인은 있어’(47.3%)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영원한 ‘소녀 가수’ 현숙의 프러포즈

‘효녀 가수’‘긍정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가수 현숙은 56세다. 그는 “시집을 안 간 게 아니라 못 갔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까지 수천 번 ‘시집갈 거냐’는 말을 들었다. 그 또한 결혼할 생각이 있다. 가능할까? 가능하다. 일단 통계적으로 60세 이상의 나이에 결혼한 여성은 2012년의 경우 2312명이다.

가수 현숙은 히트곡도 많지만, 군부대 위문(1300회 이상)이나 해외동포 위문(2000회 이상) 분야에서도 우리나라 최고 가수다. 11일 그를 만나 가족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시집가라’는 말은 몇 번이나 들었는지.
“수천 번도 더 들었다. 익숙하다. 최근에 감기 몸살을 심하게 앓았다. 이렇게 아픈 것은 초등학교 이후 처음이다. 아플 때에는 남편밖에 없을 것 같다. 물 떠다 주고 약도 사다 주고··· 그때 많이 생각했다. ‘가긴 가야겠구나’라고.”

-‘시집가라’는 말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간다고 했다. 안 간 게 아니고 못 간 거니까. 기다림이 있고 설렘이 있다. ‘내 짝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도 있다. 아직 인연이 없었나 보다.”

-‘주책이다’라고 하는 사람은 없는지.
“빨리 가라고들 하신다.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예쁠 때 가라고···. 결혼이 어렵다는 걸 안다. 결혼해 사시는 분들 보면 존경한다.”

-선이나 소개도 많았을 텐데.
“많이 들어왔지만··· 엄마·아빠가 중환자셨다. 우리 엄마는 13년 동안 물 한 모금 못 드셨다. 나 혼자 행복하겠다고 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때를 놓쳤다. 예상과 달리 가수들은 짝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가수들은 자신이 노래할 시간 30분 전에 가서 노래하고 곧바로 무대를 떠난다. 예컨대 탤런트는 드라마를 같이 찍으면서 서로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우리는 그런 기회가 별로 없다.”

-가수라는 직업은 너무 화려해 결혼생활과 잘 맞지 않는 것은 아닌지.
“가수의 삶은 사실 굉장히 평범하다. 저도 집에 가면 빨래·청소·설거지 다 한다. 설거지는 요령이 있다. 그릇을 가지런히 잘 놔서 물이 잘 빠져야 한다. 사람이 소일거리가 있어야지 너무 편하면 안 된다. 저는 제 몸을 항상 괴롭힌다.”

-동안(童顔)의 비결은. 의학의 힘인가.
“아까도 어떤 분이 ‘어, 방부제를 드셨나’라고 했는데 저는 제 몸을 아끼고 사랑한다. 마구 걷는다. 11층이건 12층이건 걸어서 올라간다. 틈날 때마다 스트레칭을 계속한다.”

-학창 시절을 회고한다면.
“식구가 많은 가운데 자라서 그런지 인사성이 밝았다고 한다. 친구들도 많았다. 운동을 좋아했다. 전국체전에 배구선수로 나갔다. 어렸을 때 꿈은 법조인이 돼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었다. 어느 날 노래자랑 대회에 우연히 세일러복 입고 가발 쓰고 나가서 일등을 했다. 그때 꿈이 바뀌어 가수가 됐다.”

-무단가출, 무작정 상경한 것인가.
“그때는 가수 한다고 하면 ‘그 집 딸 큰일 났다’고 하니까. 아빠는 야단치셨고 엄마가 그 시절 상당한 돈인 만원하고 쌀·김치를 마련해 주셨다. 기차역에서 떠날 때 엄마가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치는 모습을 봤다. ‘어여 가라, 어여 가라’고 하시며 우셨다. 그래서 저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 얼굴을 생각하면서 ‘좌절하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서울 와서 문전박대도 당했다. 오기가 생겼다.”

-상경 후 제자로 거두어 주신 분은.
“‘오뚜기 인생’을 부르신 김상범 선생님이다. 선생님이 중동 근로자를 위한 노래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1979)를 부르라고 하셨다. ‘철이 공부시키면서 당신만을 그립니다. 염려 마세요. 건강하세요. 당신만을 사랑하니까’라는 가사의 노래인데, 사실 저하고는 안 어울리는 가사다. 시집도 안 갔는데··· 제 나이에 맞게 밝은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선생님께서 ‘수많은 가수들이 노래 잘한다. 그렇다고 현숙이 네가 예쁜 것도 아니고 얼굴도 까맣고 촌스럽기 짝이 없는데··· 어떤 시대적 이슈와 맞추지 않으면 이 계통은 성공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효녀 가수’라고 불렸는데.
“저는 효녀 가수라기보다는 아쉬움이 많은 가수다. 어제까지도 계셨던 부모님들이 엄마·아빠 불러도 대답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효녀는 아니고 오히려 효를 다하지 못한 아쉬움이 많다. 인생에서 최고의 기회를 주신 김상범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선생님이 자식이 없으셔서 상주 역할을 했지만 계실 때 잘 해드리지 못해 아쉽다.”

-가수가 돼 행복했는지.
“가수가 되길 참 잘했다. 많은 분께 힘이 되는 노래를 불렀다. ‘포장마차’가 히트한 후 ‘사업하다 실패했는데 현숙씨 덕분에 포장마차로 일어섰다’는 분의 말도 들었다. 많은 분과 함께 나누고 기쁨도 함께 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

-슬럼프도 있었나.
“1988년부터 2005년까지 사회가 좋아하는 노래 장르가 바뀌면서 힘들었다. 가수라는 직업이 처한 현실은 너무나 냉정했다. 2006년부터는 지금까지 연말 10대 가수로 한 회도 빠지지 않고 선정됐다.”

-인생에서 제일 자랑스러운 것은.
“항상 씩씩했던 것이다. 제가 씩씩해야지 누워계신 부모님이 근심·걱정을 안 하시기 때문이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32장의 앨범을 냈는데, 되든 안 되든 1년에 한 장씩 꼭 낸다. 앨범을 낼 때마다 잠을 못 이루고 4, 5㎏씩 빠지지만 그때가 가장 즐겁고 설렌다. 음반을 내면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작사도 많이 했는데 ‘창작의 고통’은.
“지방에 갈 때 기차를 많이 타는데, 문득문득 떠오르는 내 인생의 장면을 가사로 담는다. 내 마음속에 있는 것, 주변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한다. 노래 가사의 ‘주인공이 나다’라는 생각이 드는 노래는 히트가 되고, 와 닿지 않으면 히트가 되더라도 오래 걸린다.”

-성공의 비결이 있다면.
“늘 감사하며 산다. 인사를 열심히 한다.”

-가수 팔자는 노랫말 팔자인가.
“겁이 많아 항상 밝은 노래를 부른다. 슬픈 노래, 결과가 안 좋은 노래는 안 부른다. ‘프로포즈’를 부르면 왠지 행복하다. 2014년 연말부터 바짝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결혼식 축가로도 불렀다. 요즘엔 젊은 남녀들이 프러포즈 송으로 부르기도 한다. 노랫말처럼 ‘내 삶의 전부’가 될 남자라면 저도 시집가고 싶다.”

-시집가면 뭐가 달라질까.
“가족이 생기면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저는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시댁이 생기면 더 행복할 것 같다.”

-최근 해외에서 9억원짜리 다이아몬드가 프러포즈에 등장했는데.
“그런 거보다는 서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고 쌀 한 톨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이상형은.
“심성이 착하고, 정신이 건강하고, 책임감 있고, 자기 일이 있어야 하고, 미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뚝뚝한 것보다는 위트도 있고, 같이 걷기 운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꿈이 없고 미래가 없는 사람은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는 사람은 싫어한다. 저는 뭐든지 도전한다.”

-가정의 의미는.
“행복과 희망이다. 가족은 항상 힘이 된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