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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공유의 동력은 역시 나르시시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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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논설위원

요즘 흥미롭게 본 프로는 KBS가 파일럿으로 선보였던 ‘작정하고 본방사수’다. 노부부, 사춘기 남매와 중년부부, 20대 세 자매, 외국인 유학생 룸메이트 등 일반인 시청자들이 제각각 거실에 모여 TV 보는 모습을 담았다. 솔직한 시청소감이 난무한다. 12일 방송에서는 “KBS 간판 프로인 ‘개그콘서트’가 너무 재미없다”며 집중 성토했다. MBC ‘압구정 백야’는 더했다. 임성한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느닷없이 멀쩡한 사람 죽이기’가 또 등장한 탓이다. 이번 드라마에서만 두 번째다. “뭐야? 진짜 죽었어?” 황당해하던 시청자들은 실소를 지나 폭소를 터트렸다. “혹시 살아나는 거 아냐? 임성한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하하하.” 노부부는 개그우먼 박지선의 외모를 품평하느라 설왕설래한다. 시청자가 TV를 소비하는 방식까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시청자 비평 프로다.

 영국 방송 채널4 ‘고글박스(Gogglebox)’의 포맷을 가져온 이 프로는 유튜브의 인기 장르인 ‘리액션비디오’를 떠올리게도 한다. 팬들이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모습을 담은 웹비디오 말이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활성화돼 있고, K팝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음악을 듣는 자기 모습을 직접 찍어 올리니 ‘동영상 셀카’쯤 된다. 해외 팬들의 리액션비디오를 순례하듯 찾아보는 국내 팬들도 많다.

 사실 리액션비디오야말로 디지털 시대 문화소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셀카가 그렇듯 그 핵심에 나르시시즘이 있다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자신의 모습, 음식을 먹는 자기 모습(‘먹방’)을 찍어 올린다. 여기에 공유가 보태진다. 공유의 동력 역시 나르시시즘이다. 이렇게 멋진 나, 이렇게 독특하고 웃긴 나를 봐 달라, 이렇게 재미있는 게시물을 공유하는 쿨한 나를 알아 달라는 것이다. 나르시시즘과 승인욕구의 결합이다. 그리고 아마도 셀카봉은 그 나르시시즘의 최고봉일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360도 빙빙 도는 세상을 담으니 말이다.

 물론 ‘작정하고 본방사수’는 이런 나르시시즘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여기선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느껴진다. 본방사수는 물론이고 온가족이 한데 모여 TV를 본다는 것 자체가 사라져 가는 풍경이다. 집안의 중심에 TV가 놓여지고, TV 시간대가 일상의 시간대를 구획하며, 심지어 인기 드라마 시간에는 수돗물 사용량이 줄었다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외마디 구호 같은 ‘작정하고 본방사수’는 저무는 지상파 황금시대에 대한 오마주(헌사)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