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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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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영종대교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피해 차량이 무려 106대다. 그런데 뉴스마다 숫자가 다르다. 여기선 105중, 저기선 106중 추돌사고라 말한다. 무슨 일일까. 우선 충돌과 추돌의 차이부터 짚자. 뒤에서 들이받으면 추돌이고 맞부딪치면 충돌이다. 그러니 추돌사고는 맞다. 그렇게 많은 차량이 충돌할(맞부딪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 105인가, 106인가. 첫 번째 차량은 받치기만 했지 앞차를 받진 않았다. 마지막 차는 받기만 했지 받치진 않았다. 그러니 105중? 무슨 소리? 106대가 파손됐고 그 원인이 추돌이므로 106중이라 부르는 게 맞다? 헷갈린다.

 추돌사고 뒤로 총리후보자 인사청문회 뉴스가 이어졌다. 후보자는 곤욕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13일의 금요일’ 다음 날은 밸런타인데이. 사랑의 초콜릿을 받으려면 무시무시한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게 세상 이치?). 지명 때만 해도 의욕이 넘쳤는데 지금은 의혹이 넘치는 상황이다.

 카메라는 질문자(공격)의 액션과 후보자(방어)의 리액션을 번갈아 보여준다. 여기서 잠깐. PD가 직업상 자주 쓰는 용어가 ‘액션’이다. ‘액션’이라고 소리치면 그때부터 연기자는 연기를 하고 카메라는 촬영을 하고 다른 스태프들은 숨을 죽인다. A가 이런 언행을 할 때 상대인 B가 보여주는 반응이 리액션이다. 그러니 엄밀하게는 연기자의 액션도 PD의 입장에선 리액션인 셈이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제작진이 노리는 건 시청자의 호응이다. 시청률이란 결국 시청자의 호감을 계량화한 숫자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날 바다 안개 자욱한 다리 위를 달리던 운전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일기예보를 보고 일정을 바꾸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조심조심하지만 혹시 누군가가 방심하면 어쩌지?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싶어도 지금의 리듬으로는 그냥 다른 차들처럼 달릴 수밖에 없는데 어쩌지? 조마조마한 가운데 결국 누군가가 리듬을 깼고 도로는 아비규환으로 바뀌었다.

 사회생활도 어쩌면 안개 낀 도로 위랑 비슷한 거 아닐까. 전방(다가올 미래)을 주시해야 하고 안전거리 확보도 필요하다. 많은 사람의 삶이 연루된 길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후보자가 미래를 위해 가방을 준비한 것까진 보기 좋았다. 그러나 유리한 자료는 넣고 불리한 것들은 분리했다면 시청자(국민)의 리액션은 차가울 수밖에 없다. 안개 속에서도 눈들은 살아 있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