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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산불 올 봄엔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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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해마다 4월을 전후해 ‘약방의 감초’처럼 발생해 자연과 사람에게 피해를 주곤 했던 봄철의 대표적 재난인 산불이 올해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예년과 달리 큰 산불이 거의 발생하지 않은 가운데 지난 2월1일 시작된 ‘봄철 산불 조심기간’이 지난 15일 끝났다. 이에 따라 그 동안 산불 예방을 위해 통제됐던 전국 2천6백1개 등산로가 지난 주말 개방됐다.

◇대형 산불이 사라졌다=2000년 4월7일부터 9일간 강원·경북 북부지역 동해안을 휩쓴 산불은 여의도 면적의 78배(2만3천7백94㏊)나 되는 산림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사망 2명, 부상 15명의 인명피해와 2백99가구, 8백50명의 이재민을 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아직도 정신적 피해와 어장 황폐화 등 2차적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올 들어 15일 현재 산불 발생건수는 총 2백21건으로 예년 같은 기간(4백49건)의 49%에 머물렀다. 피해면적은 예년의 2%에 불과한 1백15ha로 1960년 산불 통계를 잡은 이후 가장 작은 수준이다.

산림청에서는 올해는 특히 ▶면적 30ha이상의 대형 산불 ▶야간 산불 ▶사망자 등이 없는 ‘3무’(無)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대형 산불은 2000년 16건, 2001년 2건, 지난해 10건이었고, 야간 산불도 2000년 1백6건, 지난해엔 57건이나 발생했다.

‘대형 산불 상습 발생지’란 오명이 붙은 강원도는 올 들어 총 8건이 발생, 지난해 같은 기간(43건)보다 81.4%나 줄었다. 영동 지역도 지난 1월 동해시에서 쓰레기 소각 중 난 불로 야산 0.1㏊가 탄 것을 제외하고 2월 이후에는 삼척·고성·강릉 등 모든 시·군에서 지금까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진기록을 남겼다.

◇왜 줄었나=올해 산불이 줄어든 1차적 요인은 기상여건. 산림청에 따르면 15일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눈이나 비가 내린 날이 ‘사흘 중 하루’꼴인 40일이나 돼 강수량(누계)이 지난해보다 12%나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96년에 이어 2000년 발생한 동해안 대형 산불이 정부와 국민들에게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준게 결정적인 배경이다.

동해안 지역의 경우 이장들과 마을 자생 단체가 중심이 돼 자발적으로 주·야간 감시조를 편성, 마을 진입로와 야산등을 순찰하며 감시 및 예방 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계도방송을 수시로 내보냈다.

2000년 산불로 전체 1백20여가구 중 34가구가 불에 타는 대형 피해를 입은 고성군 죽왕면 삼포 2리 송상원(61)이장은 “두 차례나 겪은 대형 산불의 악몽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주민들이 마을을 드나드는 차량 번호를 일일이 기록하고 산나물을 뜯으러 오는 외지인들이 인화물질을 맡기지 않으면 입산을 막는 등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 ”고 말했다.

충북 영동군 심천면사무소는 부족한 산불감시원을 대신해 관내 남녀중학생 76명으로 자원봉사대를 조직, 지난 식목일부터 주말과 휴일에 활동을 전개해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

충북 단양군 구인사와 전남 순천시 송광사 등 사찰에서는 승려들이 자체적으로 ‘산불진화대’를 조직하기도 했다.

산림청도 기동력을 대폭 보강해 올해 처음 전국적으로 산불전문진화대(2천2백56명)를 조직하고 헬기(37대)를 통한 상시 공중감시 체제를 구축했다.

대전=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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