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0년 전 주민초본까지 등장 … 신상털기 청문회 언제까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새누리당이 12일 이완구 총리 후보자 청문경과보고서를 단독 처리했다. 이날 인사청문특별위원회 회의 시작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한선교 위원장(오른쪽)에게 항의하며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사진=최승식 기자
위문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두 얼굴의 청문회였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이틀째 인사청문회가 열린 국회 본관 245호실.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이 “이완구 후보자의 거짓말 3탄”이라며 준비해온 패널을 꺼내 들었다. 이 후보자와 부인의 1975년도 주민등록초본이 나란히 인쇄된 자료였다.

 ▶진 의원=“혹시 사모님이 ○○○씨가 아닌 건 아니죠?”

 ▶이 후보자=“아닙니다. 그건 제 자식 이름입니다.”

 ▶진 의원=“여기에 보면 이완구라는 이름이고요. 이완구 처라고 되어 있습니다. 잠깐만요….”

 40년 전의 자료를 꺼내들고 자신만만해하던 진 의원은 “이것은 제가 다시 확인하고 말씀드리겠다”며 황급히 패널을 내려놓았다.

 그는 이 후보자가 신혼 시절 서울 응암동 단독주택에서 잠실의 아파트로 입주 예정일보다 두 달 먼저 전입신고(1978년 2월)한 경위를 캐물으려 했다. 그러나 이 후보자 아들과 부인 이름을 혼동하는 바람에 스텝이 꼬여 이 문제는 질문하지 못했다. 아무튼 인사청문회에 서려면 수십 년 전의 전입신고까지 기억해야 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후보자가 몇몇 기자와 만나 부적절한 언론통제 발언을 해 위기를 자초한 탓도 크지만 이번 야당 의원들의 청문회 접근 방식은 그간의 청문회에서 봐왔던 익숙한 것들이었다.

 으름장, 호통, 망신주기…. 여기에 40년 전 주민등록초본까지 등장한 극심한 ‘신상털기’가 이뤄졌다. 정책검증은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야당 의원들은 청문회를 마칠 때쯤에야 구색을 갖추듯 경제정책에 관한 질의를 조금씩 끼워넣었다. 그게 민망했던지 홍종학 의원은 “경제 얘기를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총리 후보자가 개인적 의혹에 대해 자료 제출을 거의 하지 않은 탓”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새누리당은 이런 야당 의원들의 태도를 비판하면서 “이런 청문회가 전 세계에 어딨느냐”(이장우 의원)고 했다.

 그럼 야당 대신 새누리당이라도 정책검증을 충실히 했을까.

 11일 오후 10시 이장우 의원과 이 후보자 간에 오간 대화다.

 ▶이 의원=“백제가 패망해 백제의 유적이 전무하다시피 했죠? 경주나 이런 곳처럼 백제의 혼을 되살리고 싶었던 것 맞죠?”

 ▶이 후보자=“200억 규모의 백제제(문화제)로 키워놨습니다.”

 ▶이 의원=“백제역사재현단지는 ‘역사에 길이 남을 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후보자는 문답을 나누면서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충남도지사 시절 사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것도 정책검증이라면 이런 질의는 어떨까. 이 의원은 첫날 청문회에서 “제가 충청도 출신입니다만 제가 정치하면서 닮고 싶은 정치지도자라면 우리 이완구 후보자였다”고 했고, 이 후보자 차남의 건강보험료 탈루 의혹이 이어지자 “사실 저도 제가 건보료를 얼마 내는지 모른다. 국회의원 중 대부분 건보료를 얼마 내는지 모를 것”이라고 했다.

 나머지 의원들의 태도도 다르지 않았다. 청문회장에 급기야 “도지사 시절 철저하게 자기 관리 하신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라거나 “아들 결혼식을 수행비서도 모를 만큼 조용히 치르셨는데” 또는 “장모님이 돌아가셨는데 (태안) 기름 유출 사고 현장에 먼저 가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같은 질문이 나왔다.

 야당은 도덕성을 검증한다며 수십 년 전 자료까지 탈탈 털어 들이대고 여당은 정책검증을 한다며 후보자가 민망해할 정도로 감싸는 곳. 신공 수준의 ‘신상털기’와 ‘칭송 청문회’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 인사청문회장이다.

위문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