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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경진아 게임기 사와라 인터넷 입금도 괜찮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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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욱 기자

*** "받고 싶은 것 있으면 제품번호 알려주지요"

오는 12월 결혼을 앞둔 김정희(30.회사원)씨. 요즘 예비신부는 틈만 나면 인터넷 쇼핑몰을 뒤진다. 다리미.토스터.전자레인지.전기밥솥…. 사야할 세간이 한둘이 아니다. 매일 하나씩 사도 결혼 전에 다 갖출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토스터 하나를 고른 정희씨, 제품번호만 적어 놓고는 사이트를 닫는다. 언제 사려고?

사실 정희씨는 토스터를 살 생각이 없다. 나머지 물건도 마찬가지. 그녀는 이런 물건들을 '부조'로 장만할 계획이다. 부조금을 받아 사겠다는 게 아니다. 현금 대신 이 물건들을 받겠다는 것이다. 이미 이런 적이 여러 번 있었기에 정희씨와 친구들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전에도 '봉투'가 아닌 선물을 주는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는 제안에 "괜찮아"를 반복하다 성화를 해야 "정 그러면…" 하고 입을 떼곤 했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정희씨도 제품번호까지 친구들에게 당당하게 일러줄 생각이다. 그녀는 "한 10명, 친하다 싶은 친구들한테는 부조금 대신 선물을 달라고 할 거예요"라며 "물론 현금도 필요하죠. 그렇지만 친구들한테까지 돈을 받고 싶진 않아요. 선물을 받는 게 진짜 축하받는 것 같거든요"라고 말했다.

선물 부조는 주는 쪽도 좋다. 박주신(29.회사원)씨는 최근 친한 선배들의 결혼식에 잇따라 선물 부조를 했다. 한 선배에겐 DVD플레이어 겸용 게임기를, 또 다른 선배에겐 컴퓨터 의자를 사줬다. 모두 선배들이 콕 찍어 사달라고 한 것들. 물론 2~3명과 돈을 모았다. 주신씨는 "그냥 봉투만 낼 때보다 선물을 알아보고 주문하는 과정에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결 뿌듯하다"며 "몇 명을 모으느냐에 따라 부담도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어 선물 부조가 좋다"고 말했다.

아예 이를 마케팅 수단으로 도입한 곳도 있다. 현대백화점은 8월 '웨딩 레지스트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신랑.신부가 작성한 원하는 선물 목록을 홈페이지에 올려 친지들이 결제를 해줄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현재 홈페이지 개선을 위해 잠시 서비스를 중단하고 있지만, 조만간 재개할 예정이다.

*** "5%만 더 내세요, 대신 돈 부쳐 드립니다"

상황1.

꼭 챙겨야 할 결혼식. 그런데 급한 일이 생겼다. 결혼식에 갈 수 없는 상황. 부조라도 해야겠다 싶어 갈 법한 이들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연락이 안 된다. 겨우 전화를 받은 한 명. 다행이다 싶었는데 "나도 못 간다. 누구든 연락되면 내 것도…" 한다.

상황2.

회사 동료 결혼식에 갔다. 식 중에 울리는 전화. 부장님이다. "나 못 갈 거 같아. 대신 부조 좀 해줘." 어려울 거 없다. 그런데 월요일 회사에서 만난 부장님, 아무리 기다려도 돈 줄 생각을 안 하신다. 독촉을 할 수도 없고…이러다 못 받는 거 아냐.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상황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막상 당해보면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오죽했으면 이런 상황을 해결해주겠다고 나선 인터넷 사이트가 있을까. 2003년 문을 연 '부주닷컴(www.bujoo.co.kr)'. 이 사이트는 부조를 대신해준다. 이용 방법은 쉽다.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한 뒤 부조 액수를 정하고, 돈을 받을 신랑이나 신부의 휴대전화번호만 입력해주면 된다. 그러면 사이트는 "○○○님이 ×만원을 부주닷컴을 통해 보내셨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이 메시지를 확인한 사람은 사이트에 들어와 은행계좌번호를 입력하게 된다. 휴대전화 요금과 함께 결제하면 되는데, 물론 부조금 외에 5%의 수수료가 붙긴 한다.

이 사이트를 이용해 올해만 5~6번의 결혼식을 무난히 넘겼다는 직장여성 박현정(37)씨. "사실 '나 못 가는데, 계좌번호 좀 불러봐' 이러면 되게 머쓱하거든요. 묻는 저도 답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이런 사이트를 자주 씁니다. 대신 좀 성의없어 보일까봐 이 사이트를 이용할 땐 미리 전화해서 반드시 양해를 구하죠." 이 사이트 이용자는 요즘 같은 결혼철엔 매주 600~700명에 이른다. 부주닷컴의 조진곤 팀장은 "특히 주 5일제 전면 시행 이후 이용자 수가 더 늘어났다"며 "주말에 시간이 난다고 해서 사람들이 결혼식에 열심히 다니는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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