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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근현대 여성사 두나라 여성들이 새롭게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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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여성 의병운동장 윤희순(?~1935)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1895년 의병운동 당시 '의병군가' '안사람 의병가' 등을 작사.작곡한 분이다. 1970~75년 일본 여성들이 전국 각지에서 가부장제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우먼 리브'운동은 아시는지?

이처럼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있던 한.일 근현대 여성사가 한 권의 교과서로 출간됐다. 한국과 일본 양국 여성학자들이 4년간 공동작업한 성과다.

책은 1일 한국에서는 '여성의 눈으로 본 한.일 근현대사'(한일여성공동 역사교재 편찬위원회 지음, 한울 펴냄)란 이름으로, 일본에서는 '젠더의 시점에서 본 일.한 근현대사'(나시노키샤 출판사)로 동시에 나왔다.

집필에는 한.일의 여성연구자 67명이 참여했다. 서로 현해탄을 오가며 여러 차례 심포지엄과 토론회를 벌였고, 수많은 e-메일과 전화를 주고받으며 목차에서 내용까지 공동 집필했다.

이번 책은 2001년 불거졌던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파동이 계기가 됐다. 일본에서 천황제 비판에 앞장서 온 여성 역사학자 스츠키 유코씨와 '여성.전쟁.인권학회' 회원들이 책을 쓰자고 먼저 제의했다. 그러자 한국에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집요하게 연구해 온 서울대 정진성(사회학과) 교수가 발벗고 나섰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전쟁과 여성인권센터'연구자도 적극 참여했다. 일본의 우익 역사 교과서에 문제 의식이 같았기 때문이다. 교과서가'일본군 성노예' 등 가해의 역사를 삭제하면서 여성차별을 군국주의의 뿌리로 삼고 있다는 인식이다.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의 관점에서 한일 양국의 근현대사를 재조명했다는 점이다. 기존의 역사가 대체로 남성의 역사(history)였다면 이 책의 서술은 여성의 주체성을 부각하고 그 삶을 담아낸 여성사(herstory)의 전형이다.

덕분에 종래의 역사교과서에 등장하지 않은 여성 인물사나 사건을 많이 접할 수 있다. 107년 전인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의 양반집 부인 30여 명이 발표한 한국 최초의 여권 선언문인 '여권통문'이 대표적 예다. 1931년 평양의 을밀대 지붕 위에서 9시간 동안이나 '고공농성'을 벌이며 고무공장 파업을 주도했던 강주룡도 있다. 이런 얘기는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당시의 여성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게 한다.

역사를 다시 해석한 예도 많다. 일제시대 무정부주의자 박열의 동지였던 가네코 후미코가 그렇다. 한 남자의 연인이 아니라 철학적 기반과 고집을 가진 철학자이자 행동가로 재평가했다.

출간의 계기가 됐던 일본군 성노예 문제도 8만~20만 명이 강제동원됐던 진상을 소상히 밝혔다. 일본이 주장하는 자발적 '위안부'가 아니라 역사의 피해자 '성노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문제 해결에 앞장섰던 양국의 여성운동과 전범여성 국제법정 얘기 등도 상세히 소개했다. 성노예 문제가 여전히 계속되는 현재의 문제임을 확인한 대목이다.

집필 책임자인 정진성 교수는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집필한 최초의 여성사 교재"라며 "대학은 물론 중.고등학교에서도 교재로 사용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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