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 왜 숨겨두나요 …‘망치’로 깨트려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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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멘토’로 불리는 박웅현씨. 책과 강연으로 소통한다. 그는 “멘토보다 ‘참고사항’이 되고 싶다”며 “인생의 답을 밖에서 구하지 말고 다른 이를 ‘참고’ 삼아 스스로 찾아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창의력’ ‘창조성’이란 말만큼 실체가 모호한 단어도 없다. 창의력은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들의 전유물이거나, 한 사람의 일생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한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오해되기도 한다.

 이 사람, ‘생각이 에너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진심이 짓는다’ 등 기억에 남는 광고 카피를 수없이 만들어 낸 박웅현(54) TBWA 크리에이티브 대표. 그를 만나면 해답을 들을 수 있을까. 때늦은 눈보라가 도심을 뒤덮은 지난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광고회사 TBWA 사무실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그와 TBWA 주니어보드팀이 최근 펴낸 책 『사람은 누구나 폭탄이다』(열린책들)를 손에 들고서다.

 “창의적인 사람이란 없습니다. 창의적인 순간이 있을 뿐이죠.” 그가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폭탄’이라는 책 제목은 누구에게나 창의성이라는 폭탄이 숨어있다는 의미다. 책에는 TBWA가 2년 전부터 진행하는 대학생 스피치 프로젝트 ‘망치’ 1기의 진행과정이 담겼다.(현재 3기까지 진행됐다.)

 주인공은 대학생 14명. 이들이 400명의 청중 앞에서 연단에 올라 각각 7분 간의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지난해 2월 첫 망치 프로젝트가 열렸을 때, 청중들은 이들의 발표를 듣고 ‘창의성이 폭발하는 현장이었다’고 감탄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였길래.

 “20대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자 처음에는 ‘남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없다’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책은 누구나 품고 있는 ‘별것 아닌 이야기’가 사람들을 울리고 박수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발표 현장은 물론 유튜브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끈 중앙대 이하정씨의 ‘썅년기를 지나는 우리들에게’는 잡담 도중 나온 ‘여자는 사춘기와 갱년기 사이에 썅년기를 거친다’는 농담에서 촉발됐다. 광고전문가인 멘토들이 이씨와 함께 이 문장에 살을 붙이고 뼈대를 잡아 젊은이들의 새로운 연애풍속도를 보여주는 하나의 스피치를 완성했다.

 건국대 신상훈씨의 ‘자가이발소’는 연설 대신 노래로 자기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풀어 관중을 웃기고 울렸다.

 박웅현 대표는 “창의력은 결국 과정관리라는 걸 이들의 사례가 보여준다”며 “생각의 씨앗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씨앗을 새로운 시선으로 낚아채고 파고들어 디테일을 관리하는 데서 창의적인 게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인문학으로 광고하라』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 등의 베스트셀러와 강연을 통해 젊은이들을 계속 만나 왔다.

 “요즘 20대는 ‘스펙 관리’로 점철된 삶을 살죠. 그런데 스펙이란 게 결국 본질이 아니라 포장이에요. 토익 점수가 진짜 영어실력을 말해주는 게 아닌 것처럼. 포장을 추구하다보면, ‘나’라는 알맹이가 사라져요. 허무해지는 거죠.” 그런 이들에게 자신의 포장을 깨부술 ‘망치’를 선물하는 것. 그것이 기성세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 ‘망치’ 중 하나가 바로 책이다. “영화도, 여행도, 사람들과의 대화도 좋아요. 하지만 책이 가장 강력한 건 지혜로운 누군가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자기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결과물이기 때문이죠.”

어떤 책을 골라야 할까. “좋은 책은 베스트셀러가 아닌 나에게 울림이 있는 책이다. 나를 잘 아는 지인의 추천, 주목하는 작가의 작품, 그리고도 찾기 힘들 땐 고전의 순서로 책을 선택한다”고 했다.

글=이영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박웅현

1961년생.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뉴욕대 텔레커뮤니케이션 석사. 제일기획에 입사해 광고업무 시작, 현재 TBWA 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대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사진) 등의 카피를 썼고, 칸국제광고제·아시아퍼시픽광고제 심사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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