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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든 시 한 줄] 이부영 한일협정재협상국민행동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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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 신경림(1936~ )의 ‘목계장터’ 중에서

구름처럼 바람처럼 돌처럼
떠돌고 구르는 민초의 삶

신경림 시인은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해체되는 농촌 공동체와 그 문화의 흩어짐과 잊혀짐을 담아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해체되어 가는 목계나루 주변 풍경을 그린 시지만, 지금의 어느 대도시 변두리 삶을 그렸다 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그것은 기억이고 그 기억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예감 때문입니다. 시인은 구한말, 일제식민 지배, 분단과 전쟁, 독재와 산업화, 그리고 오늘을 통째로 바라보면서 그 난리통을 살아내는 민초들의 삶을 그려냅니다. 그래서 시대가 바뀌어도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이 계속 나타나는 겁니다.

 어떤 이는 시인의 시를 민중시라고 부릅니다. 어렵게 여겨지는 시가 우리말의 아름다운 정겨움으로 이토록 가깝고 살갑게 다가올 수 있다면 무슨 시인들 어떻습니까.

 1970년대 초 제가 언론사의 문화부 기자로 일하면서 맺어진 인연이 40여 년이 지났습니다. 70~80년대 험한 시절엔 모여 다니다 반국가단체로 몰릴까 두려워 ‘무명(無名) 산악회’라는 산행모임을 함께하기도 하면서, 좋은 일이나 궂은 일이나 말씀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팔순을 넘기신 시인이 후배들과 함께 건강하게 산에도 오르고 좋은 글도 오래 쓰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부영 한일협정재협상국민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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