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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사고」위험 안은 "금융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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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제 단순한 「금융사고」라는 진단을 내릴 시기는 지난것이 아닐까. 짧은기간에 집중되어 「폭발」하는 최근의 대형 금융사건들은 금융이라는 경제의 치명적인 어느 한 환부에 국한된것이 아닌, 「경제전체의 병」 이라는 생각도 든다. 자본주의 경제를 지탱하는 뼈대라 할수 있는 통화질서를 뿌리째 흔들고도 남을 금융사고들이 지난해 이후부터 벌써 세번째-. 이·장사건, 명성사건,영동개발진흥사건등 사건 하나 하나의 사고금액규모가 한결같이 관련은행의 자본금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고보면 통화신용의 마지막 보루인 국내은행들은 이미 치명적으로 멍들어 있는셈이다. 은행의 손해도 손해지만 더 치명적인것은 공신력의 실추다. 그래도 은행만은 믿을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것마저 의심받기 시작한 것이다. 은행을 못 믿으면 세상에 무엇을 믿겠는가.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근본이 흔들리는 것이다.
권력에 약하고 금전적인유혹에 쉽사리 넘어가며, 한쪽으론 대기업에 물리고 한쪽으론 사채전주의 예금을 애걸하는 은행상만 확대·부각되고 있는것이다.
더구나 더이상 덮어둘 수 없을때까지 쉬쉬하며 버티고 버틴끝에 깜짝 놀랄만한 은행사고가 표면화되어 터질때마다 신종 사기수법이 나온것처럼 떠들썩하지만 실은 그 수법 하나하나가 아는 사람들사이에선 이미 다 관례처럼 통용돼오던 「금융관행」이었다는 점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표면화될수있는 많은 금융사건들이 지금도 각 은행의이곳저곳에 잠복해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것이다.
이·장부부나 김동겸전상은대리, 영동개발진흥 곽씨일가, 11인의 조흥은중앙지점 직원들처럼 욕심이 지나쳐 발각되면 「금융사고」요, 그 규모가 작아 미처 알려지지 않고 넘어가면 얼마든지 「금융관행」으로 묻혀버리는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은행의 일선사단장격인 지점장이 은행장을 속이고 지점차장이 지점장 몰래 일을 저지르며, 다시 은행대리가 담당차장을 속이는 이상 백약이 무효일수밖에 없다 .은행의 피라미드구조가 그바닥부터 간단히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보면 이제껏 뻔질나게 발표된 수습대책·제도개선방안·감독기능의 강화등이 다 사후약방문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같은 금융사고들을 모두 「인재」의 탓으로만 돌릴수 있을까.
관련 은행장이 「부덕의 소치」를 자인하고 해임되거나, 관계장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거나, 시쳇말로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개탄한다고해서 속시원해질 문제가 애초부터 아니다.
또 몹시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은행원의 낮은보수·사기저하·자질문제등을 금융사고의 주인으로 내세운다는것은 월급만 후하게 주면 자연히 사고가 근절된다는 생각과 다를바엾다.
적어도 단순한 「금융」차원을넘어선 「경제전체의 병」이라고 누구나가 인식할만큼의 큰사고들이 연이어 터졌다면 금융정책,나아가서는 겅제정책을 다루는 책임자급에서 어느 한사람이라도 그 「원죄」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따져보았어야할 일이다.원죄를다스리지않고 나온 그간의숱한대책들이 결과적으로 모두 임시처방에 그치고 만것도 당연한 일일수밖에 없다.
물론 해외의존도가 큰 우리경제가 아무리 지혜를 짜보아야 어쩔수 없는 문제들도 경제 중증의 큰 발병요인이긴하다.
세계경제의 침체와 중동건설의 퇴조는 국내경제운용의 한계를 무척이나 좁혀놓았다.
팽창 일변도로 치닫던 경제운용방식의 구조적인 전환이 불가피해졌으나 이것이 제대로 잘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책적인 대응이 마련되기도전에 공영토건등 많은해외건설업체들이 물려돌아간 이·장사건이 터져버린것이 따지고보면 불행이었다. 사건이 워낙 엄청나 수습도 급했던데다 「이번에야말로」 하는식의 무리가 무리를 남는 결과가됐다.
자금위기에 몰린 해외건설업체들이 이른바 견질어음을 남발하지 않았던들 이·장사건의 규모가 그토록 커질수 없었을것이고 이·장사건이 터지지 않았던들 실명제실시와 파격적인 금리인하등 금융정책의 급선회가 상식을 넘어서 무리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 당장 기업의 연쇄부도를 막기위해 어쩔수없는 일이었다손 치더라도 이·장사건직후 그토록 많은 돈을 풀어대지 않았더라면 고통스런 긴축의 바람이, 그것도 저금리체제라는 상반된 조건속에서 올초부터 불어닥치지않아도 될일이었다.돈을 마구 풀때의 부작용은 시일을두고 나타나지만일단 너무 많이 풀린 돈이라도 이를 급격히 거두어들일때는 그 부작용이 즉각 나타나게 마련이다.
즉 저금리와 긴축의 상승작용은 일단 은행을 압박했고 이는 일부 대기업그룹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들을 몰아붙여 은행은 은행대로,기업은 기업대로「실적」과 「자금」에 눈이멀어 금융사고의 규모를 턱없이 키워놓은 것이다.
이·장사건이후의 금융사고들이 모두「연쇄사고」의성격이 짙은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다시말해 이·장사건이나 저금리의 영향을 받지않고 시중의 자금만 원활하게 돌아갔다면명성과같이 감히 상상도 못할 규모의 변칙자금조달은없었을 것이다.또 명성사건이 제도금융은 물론 사채시장까지 얼어붙도록 하지않았다면 지급보증남발에기댈수밖에 없었던 영동개발진흥사고는 이토록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영동개발진흥이 전부사장 곽경배씨를 통해 이·장사건때 2백억원이 넘는손실을 보았던것이 화근의하나였다는 점은 금융사고가 서로 물고 물려 돌아간다는 사실을 실감케한다.
또 3건의 금융사고 모두가 80년초부터 시작되었거나 본격화된것이어서 시기적으로도 비슷하다.
그동안 무리한 팽창주의가 금융의 압박으로 나타났고 금융이 그것을 도저히 감당할수없어 여러변칙을 거듭하다 급기야 터지고 만것이다. 결국 「올것이온것」 이라 할수있다.
최근의 저금리와 중동건설경기의 퇴조, 갑작스런 긴축등이 이를 부채질했다.
금융사고에 건설업체들이많이 끼는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문제는 이번 영동사건이대형 금융사고의 마지막이아닐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모든 기업들이 하루하루 겨우 자금줄타기를하고있는데 잇따른 대형사고로 돈이 제대로 안돌면와르르 무너질게 무척많다.
금융거래가 모두 정상적이라고 할수없고 여러 변칙이 성행되고있는것이 요즘의 금융현실이며 특히 은행에서 막대한 지보를 한 해외건설들이 대부분 숨가쁜 곡예경영을 하고있다는점에서 더욱 그렇다.
잘못 대처하면 연쇄사고가 날 우려가 충분이 있으며이점이 가장 걱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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