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경선 중 ‘이완구 사퇴 요구’ 성명서 만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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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입장에서 본다면 악연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그렇다. 문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총리 인사청문회에 임하는 야당의 기류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날이 바짝 서 있다.

 문 대표는 전당대회 이전에 이미 이 후보자를 총리에 임명하는 데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정한 일이 있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문 대표의 핵심 측근은 9일 “당 대표 경선이 진행되던 중 문 대표의 뜻에 따라 ‘이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만들었다”며 “그러나 참모진들이 ‘후보 자격으로 성명을 낼 경우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반대해 실제 공개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공교롭게 총리 인준안 처리가 대표의 ‘데뷔전’이 돼 부담스러워진 건 사실이지만 첫 무대인 만큼 원칙대로 밀고 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문 대표가 ‘이완구 불가론’으로 돌아선 시점은 지난 6일 이 후보자의 ‘언론 통제 발언’이 불거진 직후라고 한다. 이 후보자가 언론사 간부에게 “특정 출연자를 교체하라”는 취지의 말을 전달해 실제 출연자가 교체됐고, 불리한 기사를 삭제시켰다는 게 문제의 발언이었다.

이완구

 문 대표는 이에 앞서 “충청 출신 총리 후보자 임명은 유감”이라고 말했다가 공개 사과를 한 일이 있다. 충청 표심을 의식해서였다. 그러나 당 대표가 된 뒤 그는 더 단호해졌다. 지난 8일 인터뷰에선 “이 후보자가 총리로서 적격인지 의문”이라 말했고, 9일 첫 최고위원회의 직후엔 “전날 밝힌 기조하에서 강도 높은 청문회가 열리게 돼 있다”고 말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인준 거부 등) 그 이상도 가 봐야 알게 되지 않겠느냐. 의혹들에 대해 강도 높은 청문회를 해 그분을 총리로 과연 모실 수 있는지 우리 당의 입장을 정하겠다”고 했다. 일단 청문회를 치른 뒤 인준 동의 여부를 정하겠다는 것이다.

 강경파 최고위원들은 이미 이 후보자에게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 후보자는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까지 짓밟는 반헌법적 인사”라며 “청문회장에 들어가면 안 된다. 자진사퇴하라”고 주장했다.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선 강경론이 우세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새 지도부가 들어서며 강경모드로 바뀌었다”며 “다른 건 몰라도 ‘언론 통제와 관련해선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전했다. 다른 의원은 “이 후보자가 청문회 문턱을 못 넘는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일단 청문회는 하되 ‘그 뒤에 판단하자’고 잠정 결론을 냈다”고 설명했다.

 새정치연합은 당 차원에서 이 후보자에 대한 10대 의혹도 발표했다. 박완주 원내대변인은 “까도 까도 양파 같은 의혹이 계속 나오면서 이 후보자에 대해 국민도 등을 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야당이 제기한 의혹은 ▶분당 땅 투기 ▶타워팰리스 ‘딱지’ 매입 ▶시간당 1000만원 황제 강의 ▶경기대 특혜 채용 ▶박사 학위 표절 ▶경력 허위 기재 ▶병역기피 ▶차남의 세금 탈루 의혹 ▶삼청교육대 관련 훈장 ▶언론 통제 등이었다. 박 대변인은 “후보자는 거취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할 것을 촉구한다”고도 했다.

당 청문위원들은 별도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청문위원들은 “후보자가 자료 요구에 무답변과 부실 답변으로 일관하며 청문회를 방해한다”며 “(검증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는 후보자가 생각하는 것만큼 형편없지 않다는 점을 경고한다”고 했다. 야당의 부실답변이란 지적에 이 후보자 측은 이날 오후 5시에 서면답변서를 국회로 제출했다. 이 후보자는 특히 “논란·의혹사항 보도 기사를 내려달라고 한 것은 언론의 자유를 훼손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의에 “양해하여 주신다면, 청문회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stron>◆오늘부터 총리 청문회=이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는 10일부터 이틀간 진행된다.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6명의 후보자가 청문회를 전후해 낙마했지만 아직까지 정치인 출신이 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한 사례는 없었다.

강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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