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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근무 많아진 K씨의 하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200l년 9월 어느 날, 개인회사의 중견간부인 K씨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에 눈을 떴다. 커튼은 햇빛이 닿아 자동으로 젖혀져 있었다.
20년 전 같으면 출근 차를 잡기 위해 서둘러야할 시간이었지만 회사의 메인컴퓨터와 각 가정을 연결하는 컴퓨터단말기가 설치된 다음부터는 자택근무가 많아졌기 때문에 아침시간은 퍽 여유가 생겼다.
거실로 나온 K씨는 방향발산기에 바다냄새를 풍기는 디스크를 끼워 넣고 리모컨으로 컴팩트 디스크 플레이어의 스위치를 켰다. 바늘 없이 레이저광선으로 음을 재생하는 전축이 나온 지는 오래 전 일이지만 요즘은 디스크에 음악 뿐 아니라 영상까지도 수록된다. 「브루흐」의 바이얼린협주곡과 함께 벽에 걸린 대형TV 스크린에는 J양의 협연장면이 비쳐졌다.
K씨 부인은 벌써 일어나 홈 팩시밀리가 인쇄해낸 전자신문을 읽고 있었다. 20년 전에는 16절지 한 장을 보내는데 1분씩 걸리던 것이 광섬유회로망이 갖춰진 오늘날에는 1초에 한 장씩 복사가 된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TV전화가 생긴 것도 다 광통신덕택이었다.
부엌에서 버저가 울리자 K씨와 K씨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갔다. 주방은 완전히 컴퓨터에 의해 조절돼, 조리법이 수록된 자기카드를 가지고 조리데이터를 맞춰놓으면 전자레인지·전자오븐 등의 각종 조리기기가 자동적으로 시간·열양 등을 맞춰 음식을 만들어낸다.
VLSI보다 한 단계 더 발달한 초격자전자소재를 쓴 ULSI가 나온 후로는 홈컴퓨터의 성능이 고도로 높아져 집안 구석구석의 일이 모두 자동화돼버렸다.
집안에는 열·연기·가스등을 감지하는 감지기가 설치돼 이상이 발생하면 홈컴퓨터가 음성합성기를 통해 이상내용을 보고한다. 가스가 샐 경우 파이프는 자동 폐쇄되고 환풍기가 작동한다. 문의 자물쇠가 음성인식기가 부착된 도어폰으로 바뀐 것은 벌써 몇년전 일이다.
게다가 요즘은 휴대용 홈컨트롤 단말기가 나와 밖에 나가서도 홈컴퓨터에 지시를 내려 목욕물을 시간에 맞춰 데워놓거나 TV프로그램을 녹화하고 식사를 준비할 수도 있다. 집안에 급한 연락을 할 때는 포킷무전기나 휴대용 가정 내 정보전송강치를 통해 연락을 취할 수 있다.
식사를 마친 K씨는 자택근무 때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방으로 가 단말기를 켰다. 물론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말로써 작동되는 음성인식컴퓨터였다. 화면에는 회사에서 보낸 오늘의 업무지시 내용과 회사에 들러달라는 전갈이 나타났다.
일일이 키보드를 누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이제는 음성에 의해 작동되는 기기가 아니면 팔리지도 않는 형편이었다.
키보드 없이 말을 하는 대로 타자가 되고 수정·편집도 가능한 음성입력타자기는 물론 5개 국어가 자동 번역돼 음성합성기에 의해 통역돼 나오는 자동번역기도 나와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일을 마무리 지은 K씨는 데이터뱅크에 연결된 가정용 정보시스팀을 통해 오늘 날씨를 알아보았다. 기상위성과 조셉슨소자를 쓴 기상대의 고속 대형컴퓨터의 분석처리로 요즘은 시간마다 지역별 일기예보가 나온다.
K씨가 살고있는 쪽은 날이 맑았지만 30km떨어진 K씨 회사 부근에는 2시간쯤 뒤에 한차례 비가 오리라는 정보였다.
우산을 챙겨 넣은 K씨는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최근에 구입한 K씨의 차는 컴퓨터제어장치가 달려있어 그때 그때 시내의 교통상황에 따라 가장 편한 코스를 잡을 수 있다. 미국의 몇몇 도시에서는 개인고속운송차가 설치돼 정류장에서 엘리베이터 모양의 차를 타고 요금이 기록되는 자기카드를 개찰기에 꽂고 행선지 버튼을 누르면 목적지까지 태워다준다지만 몇 년 후에나 설치될 전망.
K씨의 회사도 사무실 구석구석이 모두 자동화돼 있다.
세계 어디라도 즉시 연결되는 TV전화·초고속팩시밀리·워드프로세서·무인배달 차가 가득하다. 부서간의 간단한 연락은 팩시밀리나 TV전화로 이루어지지만 물건을 보낼 때는 무인배달 차에 싣고 사무실 번호를 누르면 몇 층이건 저절로 찾아가게 되어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컴퓨터프로그램을 자동 작성해주는 자동프로그래머가 나와 회사에서는 이미 주문을 해놨다는 얘기였다.
TV화면에 갖가지 그림이나 글씨를 쓸 수 있는 전자캔버스와 전자칠판이 나온 것은 벌써 여러 해 전 일이고 요즘은 결재서류를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상사에게 보내면 상사는 해당란에 전자펜으로 사인을 하면 자동으로 파일이 된다. 문서가 필요하면 물론 프린터를 통해 언제든 찍어낼 수 있다. 오랜만에 회사동료들과 대화를 나눈 K씨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자동화되면 앞으로 내 손으로 할 일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K씨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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