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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 <48>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0월23일.
며칠동안 몹시 몸이 피로하고 목이 아파서 일기는 못쓰고 급한 편지만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타이프했다. 대통령은 현재의 한국실정을 알리기 위해 AP통신의 「킹」기자를 초청하겠노라고 나에게 말했다.

<미 기자도 세뇌된듯>
그는 상당수의 미군정요원들이 민간행정을 인수하러 북한으로 간 사실을 보도했던 기자였다.
「킹」기자가 이틀후에 돌아올것이라고 해서 우리는 뉴욕타임즈의 「존스턴」특파원을 부르기로 했다.
대통령은 「존스턴」을 『정의의 사도』라고 불렀다.
그의 진실한 인품과 신뢰감을 느끼게하는 태도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갖게했다. 대통령은 UP통신의 「제임즈」특파원을 초청해서 제법 긴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였다.
아마도 대사관측의 설득과 충고에 세뇌된 모양이었다.
대통령은 이미 미국정부가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서 앞으로 북한주민들이 겪게될 혼란과 고통을 생각하며 괴로와하고 있다.
평양을 다녀온 백장관과 이장관과 「헬렌·킹」, 그리고 국방장관은 대통령이 예상하고 염려했던대로 미국인과 국제연합에 대한 불신감과 의심이 대단했다고 보고했다.
도시가 거의 텅 비어 있었고 주민들은 공산당의 선전에 의해 미국사람과 국제연합이 자기들을 죽이러 오는줄로 오해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더러 평양으로 돌아오기도 했는데 시가지를 걷다가 백낙준박사와 이윤영목사가 자기들을 알아보거나 상대방을 아는 그런 사람들을 더러 만나보게 되었다.
백선엽장군의 안내를 받으며 몇몇 미국신문기자들과 함께 다녔는데 그곳 사람들은 『누가 당신들을 여기에 보내서 왔소』하고 묻더라고 한다.
백장군이 『여기는 내가 태어난 고향이고 내 고향사람들을 해방시키기위해 싸우고 있다』고 대담했다.
그리고 우리 대통령이 자기들을 보내서 왔다고 말하자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많은 미국사람들이 평양에 있으며 그들은 왜 우리정부를 빼앗았소』하고 묻자 백박사는 내각에는 북한출신장관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미군이 죽이러 온다>
이 사람들은 말하기를 공산당은 평양사람들을 황해도의 높은 자리에 쓰고있고 황해도사람들은 평양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공산당이 여기 주민들에게 한국을 집어삼키려는 외국인들이 많이 쏟아져 들어올것이라고 선전했기때문에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해 의심을 많이 품고 있었으며 이 사람들은 미국사람 보다도 왜 대통령이 안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앞으로 대통령이 꼭 올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미국사람들에 대한 의심을 여전히 풀지 못했다.
아무리 길든 짧든 과도기라 할지라도 이것이 우리가 미국사람들이 민간행정을 맡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해야되는 또하나의 이유다.
북한에서는 공산당이 대한민국을 미국이나 국제연합의 괴뢰에 지나지 않는다고 너무나도 철저히 가르쳐 놓았기 때문에 해방된 지역에 우리정부의 권한이 즉각 미치도록 하는것 이외에는 아무런 방법도 맞설수가 없는것이라고 대통령은 생각하고있다.
보건문제를 조사하러 여기에 온 「흄」장군이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야기가 끝날무렵 대통령은 「맥아더」장군에게 사적인 메시지를 전해주도록 부탁했다.
「흄」장군은 퍽 지적이고 이해심있는 장군이었다.

<맥아더는 관여않길>
대통령은 그에게 헤아릴수 없이 많은 전직군정장교들이 선거후까지도 북한에서 계속 민정을 담당하기 위해 들어오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흄」장군한데 「맥아더」장군에게 그렇게하는것이 얼마나 현명치 못하며 「맥아더」장군이 거기에 끼지않도록 충고해주기를 부탁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결국에는 장군의 명예를 위해 해가 될뿐 일이 제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사람들은 「맥아더」장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영원히 지니고 싶어한다고 전하도록 대통령은 「흄」장군에게 말했다.
북한주민들은 자기네 가정과 생명의 불안정으로 신경이 날카로우며 우리에게 자기들을 보호해 주도록 경찰을 보내달라고 호소하고있다고 「헬렌·킴」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대통령은 조병옥장관에게 즉시 평양으로 경찰을 파견하도록 지시했다.
대통령은 되도록 평양출신 경찰관들을 보내도록하라고 부언했었다.
하늘은 티없이 맑고 서늘한 가을바람이 뜰앞의 국화향기를 한결 더 향기롭게 해주건만 대통령의 가슴은 무겁기만해서 이마의 주름살이 늘어만간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과 난관이 앞을 가로막는다 해도 기필코 극복하고 싸워 이겨서 남북통일을 이룩하여 북한주민을 해방시키겠다는 대통령의 투지와 결의는 젊고 새롭기만 하다.

<해주까지 가다 제지>
10월24일.
평양으로 파견한 2백명의 우리경찰병력이 해주에서 24군단에 의해 정지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대통령은 안면신경을 움직이며 손을 후후 불었다.
『그자들이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그 따위짓을 하다니….기어이 탯덩이녀석을 정신차리도록 해주겠어』하며 대통령은 흥분했다.
대통령은 「처치」장군을 탯덩이녀석이라고 부르며 항상 못마땅해 했는데 바로 그곳이 「처치」장군이 관할하는 미군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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