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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 부슬비 맞으며…상복인파 줄이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위령제가 열린 서울운동장에는 이날 상오7시부터 검정양복과 흰와이셔츠 흰불라우스등을 입은 상복차림의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 상오8시30분쯤에는 운동장과 스탠드가 가득 메워졌다.
위령장에는 『소련의 살인만행 세계가 분노한다』『냉혈의 살인마 소련을 규탄한다』라고 적힌 대형 플랜카드가 물결쳤고 시민들은 손에 손에『민족이여 궐기하라』『살인집단 응징하자』라는 피킷을 들고나와 순연한 분위기속에 소련을 규탄했다.
중앙제단앞 오른쪽에 마련된 유가족석에는 검은색 양복과 소복차림의 희생자 유족들이 영정을 안고 자리를 잡았다.
상오 8시10분 윤정임씨(50)가 아들 윤이식군(22·미국뉴욕킹즈칼리지)의 영정을 안고 제일먼저 들어와 맨앞줄에 자리했다.
윤씨는 아들의 사진을 쓰다듬으며『이 에미보다 먼저 불귀의 객이 되다니』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제단 밑에는 전두환대통령이 보낸 대형조화를 비롯해 각계에서 보낸 조화50여개가 놓여있었다.
15명의 희생자를 낸 필리핀은 주한대사관에서 꽃바구니를 보내 눈길을 끌었으나 주최측은 일본인희생자 28명의 이름과 일본국기가 새겨진 위패를 한국인과 인도인의 위패중간에 마련했다가 일본인유족들이 위령제를 원하지않고 위령제행사에도 참석치 않는다고 통고해 위령제 시작전에 철거했다.
숨진 김희철교체부기장의 장녀 수지양(14·서초중2년)이 유족대표로 나와 고별사를 읽어내려가는동안 3백여 유가족을 비롯, 장내는 온통 흐느낌으로 가득했다.
수지양은 울음을 억지로 참아가며 고별사를 읽었는데 『아버지, 정말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셨나요』라는 대목에선 참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아 장내는 울음바다가 됐다.
또 부기장 손동휘씨의 부인 유행자씨(43)는 쌍동이딸 은경·은미(21)양과 장남 재곤군(17)으 끌어안으며『재곤이가 장가갈 때까지 열심히 일하겠다며 집을 나간 것이 마지막이 될줄이야』라며 말을 잇지못했고 KAL기의 보안승무원 김충렬씨(36)의 부인탁윤숙씨(31)는 남편김씨가 평소 입던 옷가지와 면도기·구두등 유품이 담긴 검은상자를 가슴에 안고 『여보, 다시 돌아올 수 없나요.』라며 울부짖었다.
이날 위령제에 참석한 외국인 유족은▲홍콩30▲미국26▲필리핀21▲호주6▲영국3▲대만3▲인도3▲말레이지아4▲월남(미국국적)2▲태국1명등 10개나라에서 99명이다.
미국인「존 올드햄」씨(27·대학생)의 유족인 형「윌리엄」씨(29·경찰관)와 여동생「샬롯」양(18)은 5일 진혼단의 일원으로 북해도사고해역에 다녀와 위령제에도 참석했다.「샬롯」양은 숨진 오빠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다 진혼곡이 울리자『이제「존」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월남난민으로 미국에 거주하는「로후·당」군(20·대학생)의 어머니「반·티·누엔」씨 (64)는『8년전 소련때문에 나라를 잃었는데이제 또다시 그들의 만행으로 아들까지 잃었다.』 면서 소련을 저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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