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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로.오경환 작품전, 돌고 돌아 다시 자연의 품으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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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커다란 바위가 파도와 바람에 쓸려 조그만 돌멩이가 되었다. 화가 윤명로(69)씨가 바닷가에서 만난 자갈은 그에게 세월의 섭리를 전해 주었다. 자연이 숨 쉬는 소리도 들렸다. 윤씨의 근작 '숨결'은 돌멩이의 모양새에서 본 자연 이야기다. 태어나 살고 늙어 죽는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을 철 가루와 물감으로 화면에 담았다. 30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열리는 '윤명로의 회화-숨결'은 거친 암석에서 보드라운 자갈로 변해온 화가의 화업 45년을 돌아보는 회고전이다.

자연은 영원하지만 그 둥근 품에 안겨 숨 쉬는 것들은 때가 되면 사라진다. 작가는 나이를 먹은 것일까. "좀처럼 규명되지 않는 것, 그것이 회화의 본질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세월 따라 캐고 따지는 일을 건너버렸을 때, 붓은 화가의 숨결이 되어 화면 위에서 춤춘다. 윤씨의 노년 그림은 느릿하고 부드럽고 크다. 그는 가도 그의 그림은 한 숨결의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02-720-1020.

화가 오경환(65)씨는 일찌감치 그림 속 광활한 우주로 떠났다. 세속 잡사를 뒤로 물리고 그지없이 크고 푸른 우주로 나아갔다. 우주에서 떠도는 영혼을 그리며 그는 무진장 자유로웠다. 11월 27일까지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 펼쳐놓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 오경환 개인전'은 우주 산책자의 여행기다. 화면에 우주를 불러놓고 매 순간 방랑에 나서는 그의 이력이 120여 점 작품에 떠있다.

지금 머물고 있는 거제도에서 오씨는 한밤중에 일어나 아침까지 하늘을 보며 그림을 그린다. 낮에는 바다를 보며 낚시를 한다. 하늘과 바다가 그의 온 몸을 채운다. 화가는 자신의 그림 속에서 우주의 한 점 운석처럼 외롭지만 검푸른 화면 위를 흐르는 흰 넋은 꽤 자유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정처없이 흘렀다. 늙어도 늙지 않는 한 예술가의 초상이다. 02-2020-2055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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