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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연찮은 물류타결 내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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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물류대란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와 화물연대 간의 협상에는 정치논리가 강하게 반영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및 한.미 정상회담과 맞물려 대외 이미지를 의식한 나머지 협상타결을 서둘렀다는 것이다. 실제 원칙을 고수하겠다던 정부는 반나절도 안돼 백기를 들었다.

이 때문에 정부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개복수술(공권력 투입)은커녕 반창고만 붙인 채 끝났다" "시한폭탄을 안게 됐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챙겨=盧대통령은 출국에 앞서 "대화가 안된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는 머뭇거리지 말고 공권력을 투입하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한때 강경대응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盧대통령은 방미 중인 지난 12,13일 두번에 걸쳐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과 고건 총리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국제적인 이미지를 감안할 때 정상회담 이전에 해결돼야 한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스스로 입장을 바꾼 셈이다.

이때부터 高총리와 문재인 민정수석이 바빠졌다. 文수석은 수시로 高총리와 연락을 취하며 의견을 조율했다고 실무자들은 전한다.

高총리와 文수석이 정부의 협상안 마련 작업을 주도했다는 의미다. 정부 관계자는 "文수석이 화물연대와의 접촉 과정에서 경유세 보조금 지급안의 윤곽을 잡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세계 시장에서 한국을 세일하는 출장길에 오른 상황에서 물류대란은 국제적인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며 "사태의 처리방향은 참여정부의 이미지가 국제적으로 각인된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데드라인은 15일 새벽=정부의 협상안이 결정된 것은 14일 심야 高총리 주재의 관계장관회의에서다. 정부 측 실무대표진도 장관회의가 끝난 뒤에야 협상안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이 회의에서 최종찬 건설교통부 장관은 "수요 공급이 무너진 것이 사태의 근본원인"이라며 高총리에게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崔장관이 협상 타결 직후 사의를 표명한 것도 이런 주장이 반영되지 못한 데 대한 의사표시라고 한다.

이에 비해 권기홍 노동부 장관 등은 조속한 협상타결에 적극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부 장관들은 시간을 끌어봤자 마땅한 해법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관 회의 직후 文수석은 기자들에게 "새벽까지 기다리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에서 작업거부를 하며 모여있던 화물연대 회원들 사이에 "정부가 새로 협상안을 제시해 협상이 곧 마무리된다더라"는 소문이 돈 것은 자정쯤부터였다.

정부는 화물연대 측에 긴급연락을 해 15일 오전 1시30분 건교부 회의실에서 밤샘협상이 시작됐다. 타결시각은 한.미 정상회담을 1시간30분 앞둔 오전 5시30분이었다.

◆시간 쫓기자 원칙 접어=강경방침에서 갑자기 백기를 들자 정부 실무진은 허탈해하는 모습이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부처의 한 국장은 "공권력 투입 등 큰소리를 쳐놓고는 화물연대 측 요구를 사실상 다 받아준 셈"이라며 "정부의 입장이 우습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른 분야에서도 각종 집단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무리'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이수호.강갑생 기자

*** 반론 보도문

본지 2003년 5월 17일자 "석연찮은 물류타결 내막" 제하의 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방미기간 중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해결할 것을 지시함에 따라 화물연대와의 협상이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 서둘러 타결되었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으나 노무현 대통령은 방미기간 중 고건 국무총리나 문희상 비서실장에게 국제적 이미지를 감안하여 화물연대 운송거부 사태가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해결되어야 한다는 뜻을 전달한 사실이 없고, 노무현 대통령은 방미를 전후하여 화물연대 운송거부 사태를 대화를 통하여 해결하되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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