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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親노조-親노동자는 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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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경제학이 하나의 학문으로서 인간 지식의 축적에 기여한 것이 많지만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는 진리를 밝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의 경제 문제는 하고 싶은 것 다 하지 못하고,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질 수 없다는 현실의 제약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학은 맞교환(trade-off)의 학문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경제 현상과 우리 생활 주변에서 수많은 맞교환의 원리가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는데

물건을 살 때 가격과 품질의 맞교환은 우리 생활에서 늘 접하는 경제원리이고, 투자에서 수익성과 안정성의 반비례 관계도 이런 경제원리의 하나다. 또 경제정책에서 단기적으로 물가와 실업의 맞교환 관계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경제의 맞교환 관계는 어느 경제학 교과서에나 나와 있는 효율과 형평, 성장과 분배의 맞교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효율.형평.성장.분배 모두 우리가 원하는 것이지만 경제원리는 이 좋은 것들을 모두 동시에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효율을 높이려면 형평이 저해되고, 분배를 개선하면 성장을 희생하게 된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오랜 연구와 경험의 축적을 통해 확립된 경제학의 기본원리이고 현실의 제약이다.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는 사람들 눈에는 될 일만 보이고, 기대효과만 크게 보이는 법이다. 이들은 대체로 추진 과정에 수반되는 비용이나 부작용은 간과하거나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좋은 목표나 정당한 개혁이라도 득이 있으면 실이 있고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있다는 경제원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좋은 예가 의약분업이다.

추진하는 사람들은 기대효과만을 강조했지만 결국 추진 과정에서 우리 경제가 작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교육평준화도 학교의 평준화는 얻었는지 모르지만 교육의 질적 저하를 초래했다.

정부는 그동안 몇 차례 중요한 노사분규 과정에서 노조 편향적 경향을 나타냈다. 근로자를 보호하고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노조 편향적 정책과 노동자 편향적 정책은 구분돼야 한다. 전체 근로자의 12%밖에 안되는 노조원을 보호하는 것이 과연 절대 다수의 근로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번 화물운송연대 차주들의 조업 거부로 인해 다른 산업의 기업들과 근로자들이 많은 피해를 보았다. 이처럼 한 쪽의 노사분규는 다른 쪽에 있는 근로자들의 복지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동조합은 공익단체가 아니다. 노동조합은 이익집단의 하나일 뿐이다. 정부가 특정 이익집단의 편에 설 때에는 그것이 어떻게, 왜 공익에 부합하는지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익집단의 압력에 굴복한 약체 정부로 보일 뿐이다. 정부가 공익을 확고하게 지키지 못하고 대형 강성노조에 계속 끌려다닌다면 그것은 결국 경제의 침체와 대다수 근로자의 복지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가 왜 공익 편에 서야하나

이미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고용안정의 결과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억제와 비정규직 근로자의 증가다. 청년 실업 문제가 결코 경기 침체 때문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정규직 근로자를 억지로 정규직 근로자와 같은 대우를 받도록 한다면 결국 기업들의 비정규직 고용 기피, 기업의 해외 이전 등으로 그나마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일자리마저 줄어들 것이다.

생산량이 늘지 않는 한 누군가가 더 가져가면 누군가는 그만큼 덜 가져가게 돼 있다. 지금 반복되고 있는 대형 강성노조의 집단이기주의는 노사 간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노노 간의 소득 재분배, 그들과 온 국민 간의 소득 재분배 문제가 될 것이다.

이것이 경제 현실이고 시장의 원리다. 따듯한 마음과 의지만으로 경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정부가 겸허하게 수용하고 제발 노사 관계에서 공익 수호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를 기대한다.

金鍾奭(홍익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