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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납북자를 위해 노란 리본을 매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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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씨의 환갑 이틀 전인 24일 남쪽의 미전향 장기수들은 일부 단체가 마련해 준 특별 잔치를 즐겼다. 고령자들을 위한 팔순 잔칫상이 차려진 것이다. 이들 중 28명은 2차 북송을 기다리는 중이다. 너무 부러워 우영씨는 눈물만 난다.

어선 동진호가 백령도 근해에서 북측에 납치된 날은 1987년 1월 15일. 선원 12명을 조사한 뒤 곧 송환하겠다던 북한은 18년째 이들을 억류하고 있다. 당시 여고 1년생이던 우영씨는 35세가 됐다. "아버지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져요."

우영씨가 부친의 북한 내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98년. 정치범수용소를 다룬 신문 특집기사를 읽다 수용자 중 납북인사 22명의 명단에 포함돼 있는 아버지 이름을 발견했다. 납치된 해도 일치해 아버지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 정부 관계자로부터 아버지의 근황을 몇 차례 '귀띔'으로 들었다. "정치범수용소에서 나왔다더라" "남쪽으로 오고 싶다고 한다". 최근엔 "위독하다더라." 그래서 마음이 더 급하다. 그러나 수없이 쫓아다닌 당국은 이제껏 단 한차례도 공식적인 회신을 주지 않고 있다. 살아계신 게 맞기는 맞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족이 북한에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죄'였다. 특히 납북 어부의 경우 '세뇌 간첩' 가능성 때문에 가족들은 감시와 의혹의 눈초리에 시달려야 했다. 남북 교류가 활성화된 지금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요즘은 오히려 남북관계의 걸림돌이라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울화가 치민다.

우영씨가 중심이 돼 납북자가족협의회를 결성한 게 2000년. "남파 간첩 출신들을 위한 북송 지원 단체는 20개가 넘는데, 강제 납북된 우리나라 사람들을 데려오자고 외치는 단체는 우리뿐이에요." 우영씨는 어디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다고 허탈해한다.

"미전향 장기수 송환을 위한 북한의 끈질긴 노력, 남한 내 인권단체와 연대, 자국민 보호를 남북 협상에서 최우선 과제로 둔 김 위원장을 지켜보면서 제가 북한 사람이었으면 지금쯤 아버지를 모셔왔을 것이라는 부러움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김정일에게 보낸 우영씨의 편지가 가슴을 후벼 판다.

우영씨는 엊그제 임진각 근처 소나무에 노란 손수건 400장을 매달았다. 감옥살이 남편에게 아내가 '사랑이 변함없다'는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단다는 내용의 영화와 노래(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에서 착안했다. "아버지가 오실 길목이잖아요. 18년이 지났지만 변함없이 아버님을 사랑한다는 가족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한국전쟁 이후 납북돼 지금까지 억류 중인 인원은 484명. 국군포로 546명을 포함하면 우리 정부가 '반드시 모셔와야 할' 북한 억류 인사는 모두 1030명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의 송환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 시늉이라도 했는가. 일본은 불과 13~15명의 납북 자국민을 위해 거국적 송환 운동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우리 정부, 우리 사회의 무심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라도 이들의 송환을 위해 사회가 힘을 합쳐 나서야 한다. 부친의 조기 귀환을 비는 우영씨에게 마음을 보태주고, 1030명 억류자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뜻으로 나무에 노란 손수건(또는 리본) 매달기 운동을 제안하고 싶다. 노랑 끈이 물결을 이루면 "대한민국은 당신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마음이 북으로 메아리치지 않을까. 이건 이념이나 체제의 문제가 아니다. 인륜, 천륜의 문제다.

허남진 논설위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