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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환자 안전 위협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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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선
고려대 의대 교수

현 정부는 한의사에게 현대적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규제를 풀어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용감한 정책을 예고했다. 의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 개혁, 시장경제 활성화 그리고 일자리 창출 방안의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효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그 까닭을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의료는 시장경제 논리만으로 작동하지 않을뿐더러 그것에만 의존해 파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했던 의료 전문 자격사 개방 정책이 시장경제 확대 논리가 가져올 위험성과 윤리적 문제로 무산된 것이 좋은 사례다. 둘째, 의료는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의대 졸업 후에도 5년 이상 오랜 수련을 요구받는 것도 환자의 안전을 일차적 가치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직 면허는 직무의 안전성을 위해 고도의 교육과 기술을 습득한 사람에 한해 독점적으로 주어진다. 그것은 소비자와 사회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는 한의학, 서양의학 그리고 치의학으로 구성된 3원화된 의사면허 제도를 갖고 있으며, 각 면허는 상호 배타적이다. 의사가 한두 학기 치과학이나 한의학 강의를 들었다고 해서 그 의사가 치과의사나 한의사 일을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대답은 너무도 자명하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자동차 면허도 차종에 따라 다른 면허를 취득해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한의학 교육에서 영상의학(X선·초음파) 강의가 있었다고 해서 한의사가 현대적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의과대학에서 영상의학 강의와 임상실습, 인턴 그리고 전공의 수련교육 과정을 모두 마쳐도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아니면 X선이나 초음파를 정확하고 책임 있게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전문의 또한 조금만 애매해도 영상의학 전문의에게 판독을 의뢰한다. 학부 강의만으로 현대적 영상기기에 정통할 수 있다는 주장은 현대 의학교육과 수련 과정을 너무 단순화한 대표적으로 비전문적이고 짧은 견해에 불과하다.

 서양의학의 최첨단 기술도 아직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존재한다. 최근 한의학의 수요가 증가하는 호주 등 외국의 사례는 바로 서양의학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기대감과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선진국에서 한의사에게 서양의학을 이용한 진료까지 허가한 것은 아니다. 한의사의 고유한 한방의료에 대한 기대나 역량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의사와 협진을 하면 되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의료인이 두 가지 의료 직역의 일을 할 경우 두 가지 면허를 모두 보유해야 한다. 또한 선진국의 경우 특수 영역의 수술은 대개 의사와 치과의사 두 가지 면허를 동시에 소지한 외과계열 전문의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이것 역시 환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도 한방병원에서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고용해 의학의 과학적 해석을 이용하는 협진 형태가 진행되고 있다.

 한방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으로 인해 불필요한 검사비가 증가할 것도 뻔히 예견되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나친 검사로 소모적인 의료라고 지탄받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의료비가 절감된다는 한의학계의 주장도 쉽게 납득할 수 없다. 따라서 한방에서 현대적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환자의 불편과 의료비를 절감한다는 주장은 정당성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국민 모두가 한방의 현대적 기기 사용을 원한다는 터무니없는 과장된 주장도 가장 높은 수준의 공신력을 가져야 하는 전문직 단체로서 해서는 안 되는 주장이다. 부풀려진 국민의 편의성보다는 국민과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즉흥적인 한방의 현대적 의료기기 허용보다는 근본적인 양방과 한방의 통합 및 면허와 교육에 대한 미래지향적 정책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