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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든 시 한 줄] 이인화 소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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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우리의 의지와 사상을 하나로 하고

전체의 힘을 하나로 모아

한쪽으로 용기 있게 나아간다면

닿지 않는 곳이 없고

몰라서 못하는 일이 없게 되어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그 희망의 나라를 만난다는 것을

다만 우리 마음의 진실이 아나니

- 담딘 수흐바타르(1893~1923) ‘희망’ 중에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모든 것을 이뤄낼 희망

이 시는 돌에 불꽃이 타오르는 형상을 모방한 위구르 불꽃 문자로 새겨져 있다. 몽골의 수도에 있는 수흐바타르 광장이다.

 너무 단순하고 관념적이어서 시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감동을 받았다. 생생한 별빛 같은 희망, 칼처럼 날카롭게 끝이 벼려진 희망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수흐바타르는 교육을 받지 못한 가난한 마부였고 특별히 글을 쓴 적이 없다. 그는 몽골에서 처음으로 혁명군을 조직해 중국군과 싸웠고 아주 작은 도시에 독립정부를 하나 세웠다. 그리고 서른 살에 죽었다.

 인간과 인간의 공동체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에른스트 블로흐는 그것을 희망이라고 말했다. 희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뭔가를 이루려는 의지다. 이 의지는 아무것도 없음에서 모든 것이 있음을 만들어낸다.

 희망은 먼 미래를 그리는 백일몽이 아니다. 희망은 삶에 지친 사람들의 현실에 잠재되어 있는 꿈이다. 경기 침체 속에서 많은 사고가 이어지고 피로에 찌든 무수한 미생(未生)들의 공허한 표정이 거리를 떠다니는 이 시대의 현실에 숨어 있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이다.

 누군가가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시와 정치는 하나가 된다. 

  이인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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