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물고기|정해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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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늘 새벽에도 나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으며 아파트 숲을 빠져나와 호박밭·콩밭을 지나 호수를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아직 희미한 수면은 흔들거리는 아낙네들의 주름치마처럼 살랑거리고 둘레의 초목들은 아직은 어린 나무들이다.
육중한 체구를 기우뚱기우뚱 땀흘리며 걷는 아줌마, 권투시늉을 하며 걷는 젊은이, 뒷걸음질 치는 노인, 많이도 나와 있다. 때로는 책가방을 든 고등학교 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들에게 무엇인가 열심히 이야기 해주며 걸어가는 부자도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찾는 호수인데 얼마전에는 하얀배를 하늘을 향한채 떠있는 많은 고기들이 눈에 띄었다. 제법 큼직한 고기도 있었다.
소화기능이 약한 나는 건강을 위해 매일같이 새벽을 뛴다. 요즈음은 거의 좋아졌으며, 이제는 몸만 건강해서 되겠는가 하는 마음에서 더러는 시도 외고, 거미줄처럼 얽힌 사람들의 관계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기도 한다. 이제는 맑은 공기 속에 맑은 머리로 하루를 계획하는 아침달리기를 내생활에서 빠뜨릴 수가 없게 되었다. 아빠들의 무거운 어깨를 의식하면서도대낮 아까운 시간에 돈내고 운동하는 여성들에 비해 얼마나 건강하고 경제적이냐, 스스로 흐뭇하게 여겼었다.
그런데 매일갈이 죽어 떠있는 물고기들을 보게 되니 무언지 불길한 것이 몸 가까이 밀려오는 것같았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은 호수이지만, 고기는 저렇게 죽어가며 우리에게 물의 오염을 말해 주고 있지 않는가. 나는 나에게 허용된 작은 쉴 곳마저 빼앗긴 것같은 아쉬움에 마음이 정말 언짢았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한동안 보이던 그 불쾌한 죽은 고기가 보이지 않게 되어 반가왔다. 그러면 그렇지…. 아파트와 체육관이 모여 있는 이곳 석촌호수.
이곳을 맑은 물, 우거진 나무, 검푸른 등을 보이며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사는 호수로 가꾸어야 하지 않을까. 호수 안에서 물고기들이 원을 그리며 높이뛰기를 하고, 밖에서는 내가 땀을 흘리며 더 멀리, 더 많이 달리기를 하고…. 훗날엔 아들들이, 나의 손자들이 달리기를 하고….
서울동구신천동장미아파트22동6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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