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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10년 전 초심으로” … 천막당사 정신 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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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05년 한나라당 시절 박근혜·김무성·유승민 2005년 1월 11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친정 체제 강화를 위해 당직 개편을 단행한 뒤 신임 당직자들과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유승민 대표비서실장, 박 대표, 김무성 사무총장. 이때부터 당내에서 친박계가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중앙포토]

“세 사람이 10년 전의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국민 눈에 비치는 오해나 소통 부족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뒤 유승민(3선·대구동을) 신임 원내대표가 한 말이다. 세 사람이란 박근혜 대통령, 김무성 대표, 그리고 자신이다. 10년 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탄핵한 여파로 당은 바람 앞의 촛불 신세였다. 당시 박 대통령은 2004년 1월 당 대표에 선출되자마자 천막당사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그리고 2005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 김무성 사무총장, 유승민 대표비서실장의 3인 체제로 꾸려졌다.

 유 원내대표의 발언은 간난(艱難)의 시대를 사명감 하나로 버틴 10년 전 그때 그 정신으로 돌아가면 해결 못할 일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는 “10년 전 우리에겐 탄핵 역풍 속에 기사회생한 당을 바로 세우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초심이 있었다”며 “당선되는 순간 그때 생각이 났다. 지금은 더욱 어렵고 막중한 위치이지만 셋 다 초심만 놓지 않는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는 모두가 인정하는 ‘원박(원조 친박)’이다. 그러나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패배 후 박 대통령 측과 소원해졌고, 2012년 대선 뒤엔 김 대표 등과 함께 ‘탈박(탈친박)’이란 이름표를 얻었다. 경제학 박사 출신의 경제통이면서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낸 그가 주요 경제 정책이나 안보 정책에 대해 청와대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서다. 이번 경선이 그와 이주영 의원 간 2파전으로 치러지자 ‘친박(이 의원)’과 ‘비박’의 대결이란 이름표가 붙은 것도 그 때문이다.

 처음엔 이런 구도가 유 원내대표에게 불리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결과는 달랐다. 총선이 1년여 남은 시점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자 의원들이 동요했다. 유 원내대표 측 참모는 “내년 총선에 위기감을 느낀 수도권의 초·재선 의원과 영남권, 비례대표 의원들이 큰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래선지 유 의원은 “나는 영원한 친박”이라고 경선 내내 강조했다. 이날 투표 전 토론회에서도 자신이 당선되면 “당청이 ‘콩가루’가 될 수 있다”고 하자 “찹쌀가루가 돼 찹쌀떡 공조를 선보이겠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을 대신해 축하 전화를 건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에게도 “잘할 테니 걱정 마시라고 전해 달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큰 격차로 당선됐다.

 “대통령과 공동운명체인 당도 위기다. 이런 위기의식과 민심에 대한 반성이 표에 반영된 것 같다.”

 -청와대와 매일 소통하겠다고 했는데.

 “원내대표로서 대통령과 당 사이의 불통 문제를 꼭 해결하겠다.”

 -곧 개각이 있을 예정인데.

 “정책, 인사, 소통, 이 세 가지가 늘 중요하다. 남은 (박근혜 정부) 3년도 그게 중요하다. 세 가지를 잘하면 성공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위기가 왔다. 인적 쇄신은 제가 말 안 해도 국민 요구가 굉장히 강하다. 국민 눈높이를 충분히 감안한 과감한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

 -증세와 복지에 대한 생각은.

 “당장 세금을 올릴 생각은 없다. 다만 증세 없는 복지는 정직하지 못한 만큼 어떤 형태가 될지에 대해 국민의 선택과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시작해보겠다.”

 유 원내대표는 2000년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정계에 입문해 2002년 이회창 대선후보, 2007년 박근혜 경선후보를 보좌했다. 새누리당의 브레인이란 평가도 그렇게 얻었다. 그는 나이(57)에 비해 치아가 안 좋다. “두 번의 대선 패배 과정에서 이가 녹아내렸다”고 한다. 15개가 넘는 임플란트 시술을 했다. 유수호 전 의원(13·14대)의 차남이다.

 ◆4선 정책위의장=러닝메이트로 당선된 원유철 신임 정책위의장은 53세로 당내 4선 의원 중 가장 젊다. 유 원내대표보다 선수(選數)는 높지만 네 살 어리다. ‘3선 원내대표-4선 정책위의장’ 조합인 셈이다. 원 의장은 이날 경선 토론회에서 “당이 위기에 처했는데 선수가 무슨 의미냐”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그는 28세이던 1991년 최연소 경기도의회 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한 뒤 96년 15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맡았고, 국회 기우회장을 맡고 있다. 합리적이며 계파색이 옅어 당내 화합에 적임자란 평가다.

이가영·현일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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