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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소득 2000만원 넘는데 … 건보료 무임승차 16만 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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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공직 생활을 하다 3년 전 은퇴한 배모(62)씨는 매달 323만원(연 3876만원)가량의 연금을 받는다. 여기에다 금융소득이 1900만원 나오고, 2억5000만원짜리 집과 중형 승용차를 갖고 있다. 배씨는 직장에 다니는 딸의 건강보험증에 피부양자로 얹혀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배씨는 ‘연금 부자’이지만 건보료는 0원이다.

 한 해 2000만원이 넘는 고액의 연금을 받는데도 피부양자가 돼 건보료를 내지 않는 퇴직 공무원들이 약 16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가 건보 개선 작업을 중단하지 않았으면 이들은 피부양자에서 제외돼 별도의 건보료를 낼 예정이었다. 2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3년 12월 기준으로 건보 피부양자 중 연금 수령자는 153만4974명이다. 연간 연금이 1001만~2000만원인 사람이 9만343명, 2001만~4000만원 수령자는 15만8309명이다. 2000만원이 넘는 사람들은 모두 공무원·군인·사립학교 교직원 출신이다. 2013년 국민연금 최고액은 연 1991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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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보부과체계 개선기획단 위원인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공무원연금 수령자들은 일반 국민에 비해 연금을 많이 받으면서도 자식의 건보증에 얹혀 건보료 무임 승차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금소득이 연 4000만원 이하이면 피부양자가 된다. 종전까지는 연금 액수에 관계없이 월급쟁이 자녀가 있으면 피부양자로 무임 승차했으나 2013년 8월 4000만원 초과 수령자(4만1500명)만 피부양자에서 제외됐다.

 김종대(68)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도 건보 무임 승차 퇴직 공무원에 속한다. 김 이사장은 “한 해에 4000만원 가까운 연금을 받는 나 같은 사람이 건보료를 한 푼도 안 낸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아내한테 피부양자로 등재돼 있다. 이런 제도가 없으면 그는 월 19만원가량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전체 피부양자는 2047만9000명이다. 전체 건보 가입자의 41%에 달한다. 이 중 종합소득(이자·배당·연금·사업 등의 소득)이 있는 사람이 233만 명이다. 연금뿐만 아니라 다른 소득까지 합쳐 2000만원이 넘는 사람이 19만여 명에 달한다. 피부양자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인정 기준이 너무 후해서다. 우선 소득 기준이 합리적이지 않다. 금융·연금·근로소득이 각각 4000만원을 넘지 않으면 된다. 세 가지 소득이 각각 4000만원, 즉 합쳐서 1억2000만원이 넘지 않으면 가능하다.

 부모·자녀 등의 직계혈족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나 배우자의 조부모나 외조부모까지 인정한다. 형제·자매만 58만7000명에 달한다. 독일·프랑스 같은 나라는 원칙적으로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만 인정한다. 그러다 보니 직장가입자당 피부양자 수가 한국은 1.4명인 데 비해 프랑스는 0.56명에 불과하다. 대만도 0.72명이다.

 기획단 위원인 신현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별로 따로 기준을 정할 게 아니라 이런저런 소득을 합한 종합소득이 2000만원을 넘을 경우 피부양자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19만여 명이 별도의 건보료(연 3869억원)를 내게 된다. 기획단도 이 같은 안을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기획단은 설명자료에서 “종합소득이 있는 피부양자에게 건보료를 부과하면 퇴직 공무원·군인 등에 대한 특혜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피부양자 기준을 종합소득 2000만원 이하로 낮추면 대부분의 공무원연금 수령자는 피부양자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단은 2일 정부의 건보 개혁 백지화에 강하게 반발했다. 단장인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내고 단장직을 사퇴했다. 위원들도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오찬 요청을 거부했다. 문 장관은 위원들의 반발이 거세자 이날 오찬 모임을 갖고 협조를 요청하려 했으나 불가능해진 것이다. 한양대 사공진(경제학) 교수는 “단장이 사퇴한 마당에 장관을 만나서 뭘 하겠느냐”며 “정부의 개선 중단에 대한 비판이 강한 점을 감안해 정부가 조속히 개혁을 재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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