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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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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공군 창군의 주역인 장지량(사진) 전 공군참모총장(예비역 중장)이 2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1세. 1924년 전남 나주에서 출생한 고인은 광주 서중을 나와 45년 일본 육군항공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이곳에서 조종사 과정을 이수한 뒤 48년 육군사관학교 5기로 임관했다. 건국 후 공군의 모체가 된 육군 항공기지사령부에서 생활하다 49년 10월 1일 동료 105명과 함께 공군 창설을 주도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50년 7월 김구 선생의 차남인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 등과 함께 일본 후쿠오카(福岡)의 미군기지로 건너가 미국이 제공한 F-51(무스탕)을 인수했다. 당시 무스탕을 몰고 대한해협을 건넌 김 전 총장과 고인을 공군에선 ‘10인의 조종사’로 부른다.

 고인은 6·25 전쟁 당시 평양 미림비행장 공습을 비롯해 낙동강 방어전, 지리산 무장공비 토벌작전 등 각종 전투에 참전했다. 고인은 자서전에 “제10전투비행단 소속 F-51기가 적의 대공포에 노출되자 생존 조종사들을 빨리 구출하기 위해 빨간 마후라를 착용할 것을 제안해 ‘빨간 마후라’의 유래가 됐다”고 소개했다. 전쟁 후 54년부터 주미 대사관 공군 무관으로 재직하며 한·미 군사협력을 통한 공군 전력 강화에 힘쓴 뒤 59년 공군 준장으로 진급했다.

고인이 자신이 조종하던 F-51 무스탕 전투기 앞에서 있다. 6·25전쟁 발발 직후 무스탕전투기를 고인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몰고왔다. [매일경제]

 고인은 5·16 직후인 61년부터 2년 동안 군인의 신분을 유지한 채 대한중석(현 대구텍) 사장으로 부임해 적자회사를 흑자로 바꿨고, 공군참모차장 시절이던 66년 ‘공군증강 5개년 계획’을 세웠다. 이어 제 9대 공군참모총장(66년8월~68년 8월) 재임중 당시 최고 성능의 미국 F-4(팬텀) 전투기 도입을 성사시켜 공군 현대화에 공을 세웠다. 김두만 전 공군참모총장(11대)은 “고인은 박정희 대통령을 여러 차례 찾아가 공군력 증강의 필요성을 강조해 베트남전 참전 대가로 미국이 원조한 1억 달러 가운데 5000만 달러를 공군이 할당받도록 했다”며 “‘팬텀 장’(Phantom Jang)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팬텀기 도입을 위해 노력해 결국 50대를 들여와 공군 전력 증강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했다.

 예편 뒤엔 에티오피아·필리핀·덴마크 대사(69~78년)를 거쳐 제10대 국회의원(유정회)으로 활동했다. 대한체육회 부회장(79년), 사단법인 한국군사학회 회장,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 회장 등도 역임했다. 고인은 생전 “다시 태어나서 어린 아이가 된다면, 커서 다시 비행사가 될 것”이란 말도 남겼다. 유족으론 장대환 매경미디어그룹 회장 등 3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

 2일 빈소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황찬현 감사원장, 윤병세 외교부 장관, 류길재 통일부 장관, 한민구 국방부 장관 등과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조문했다. 영결식은 4일 오전 7시 공군장으로 엄수되며 국립 서울현충원에 봉안된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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