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 김희진, "지금까지 배구 인생 최고의 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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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질 뻔 했어요." 김희진(23·기업은행·1m85㎝)은 경기 뒤 웃음을 지으며 인터뷰장에 들어섰다. 그럴만 했다. 프로 데뷔 후 개인 최다 득점을 올린 김희진은 외국인선수 데스티니의 공백까지 메우며 선두 도로공사 격파에 앞장섰다.

기업은행은 2일 성남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여자부 5라운드 경기에서 도로공사에 3-1(25-17 10-25 25-23 25-23)로 이겼다. 14승7패(승점39)가 된 기업은행은 2위 현대건설(14승7패·승점40)을 바짝 쫓았다. 기업은행은 상대전적에서도 3승 2패 우위를 점했다. 9연승을 달리던 도로공사는 이날 패배로 15승7패(승점43)가 됐다.

김희진은 최근 2경기에서 주포지션인 센터가 아닌 라이트로 나서고 있다. 데스티니가 지난달 14일 인삼공사전에서 발목을 다친 뒤 3주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이틀 뒤 검진을 받을 예정이지만 빠른 복귀는 어려워 보인다. 당연히 김희진의 어깨가 무거웠다. 김희진은 데스티니 없이 나선 첫 경기였던 21일 현대건설전에서 47.97%의 공격점유율을 기록하며 16점을 올렸다.

두번째 경기에서는 더욱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종전 한 경기 개인 최다 득점(27점)을 훌쩍 넘어 35점을 올렸다. 점유율은 52.6%를 기록했고, 전체 공격의 3분의 1이 후위공격일 정도로 위치를 가리지 않고 뛰어올랐다. 블로킹(2개)와 서브에이스(2개)가 하나씩 모자라 트리플 크라운(후위공격·블로킹·서브득점을 각각 3개 이상 기록하는 것)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더 바랄 것 없는 경기였다. 득점을 올린 뒤 세리머니를 하지 못할 정도로 힘이 없었지만 투지를 발휘한 결과였다. 이정철 기업은행 감독도 "김희진이 아주 좋은 플레이를 펼쳤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희진은 "정말 힘들었다. 데스티니가 없어서 (박)정아와 나한테 공이 올라올 수밖에 없다. 책임감이 컸던 것 같다. 1세트부터 지쳤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힘들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오늘 경기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님이 함박웃음 짓는 걸 처음 봤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감독님이 '할 말이 없다'고 하셨다. 최고의 칭찬이었다"고 말했다. 데스티니가 빠진 뒤 후위공격 연습을 많이 한 것도 주효했다. 김희진은 "라이트로서도 합격인가요?"고 웃으며 "센터에선 앞과 옆만 보면 되는데 후위에서는 시야가 넓어지는 게 좀 힘들었다"고 말했다.

김희진 자신도 경기력에 만족한 모습이었다. 그는 "오늘 경기까지만 따진다면 인생을 통틀어 제일 잘 한 경기다. 하지만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좋은 경기가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성남=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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